[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23일 대법원에서는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 정부가 장애인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데 대해 국가배상 책임이 있는지를 두고 벌어진 소송에 관한 겁니다. 국가가 편의점이나 식당 등의 편의시설 설치의무 기준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건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라는 게 이번 소송의 쟁점입니다.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소송은 지난 2018년 지체장애인들이 편의점 GS25 운영사인 GS리테일 등의 사업자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겁니다. 편의점 앞에 계단은 설치됐지만, 장애인을 위한 이동 시설이 마련되지 않는 등 일상적 생활편의시설 이용이 부당하게 제한되고 있다며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낸 겁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소규모 소매점에도 편의시설 설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장애인들은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며 대법원까지 간 겁니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바닥 면적 300㎡(약 90평) 미만 소매점에 대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9년 기준 전국 90% 이상 편의점들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었습니다. 해당 시행령은 2022년에 와서야 설치의무 기준이 50㎡(약 15평)으로 개정됐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시민단체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원고 측인 이주언 공인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공개변론에서 “행정입법 부작위는 행정청에게 시행령을 개정할 법적 의무가 발생하고, 상당 기간 정당한 이유 없이 개정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장애인등편의법 제정 당시 바닥 면적이 300㎡ 이상인 전국 편의점은 1.4% 수준이었고, 이 기준을 개정하는데 24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된 이후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09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국내 발효,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등 시행령을 개정할 정당한 이유들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행정입법 재량권을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통해 국가 책임 명확히 해야”
정부 측은 그동안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등편의법 미개정만으로 부작위 요건이 성립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이산해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은 건축물의 규모와 용도, 수혜 대상의 유형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소매점 접근권의 경우 온라인 구매나 대형마트 등 다른 대체 수단이 있고, 소상공인과 영세 사업장들도 고려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이날 공개변론에 앞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소송을 통해 장애인 기본권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송 당사자인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지난 6년간 국민 기본권인 접근권 보장을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며 “그동안 편의점 등 사업자들의 개선 움직임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국가 책임과 의무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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