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집 근처 편의점이나 공원 화장실조차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2018년 장애인들은 정부와 GS리테일 등을 상대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차별구제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23일 대법원에서는 이 소송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개최됩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장애인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설물 접근권과 이동권, 정보 접근권 등에 대해서 점검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편의점(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씨스페이스24) 점포는 5만5580개입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점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편의점 입구의 계단이나 경사로를 넘지 못합니다. 시각장애인들 역시 편의점 안에 점자 표시나 호출벨이 없어서 불편을 겪습니다. 올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6년째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편의점이나 식당 등 생활편의시설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겁니다.
참다못한 장애인들은 지난 2018년 정부와 GS리테일(GS25을 운영하는 사업자)을 상대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에선 사업자에 대한 책임만 인정되고, 국가의 배상책임은 기각됐습니다. 이에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들은 장애인 접근권 차별에 대해 국가의 잘못을 묻지 않는 건 누구나 평등하게 시설물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국가의 책임·의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은 23일입니다.
김준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재활센터 소장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대법원은 공개변론에서 장애인 접근권과 국가의 배상책임에 관한 각계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계획입니다. 장애인단체들은 공개변론에 앞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준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재활센터 소장은 17일 1인 지위를 하며 “편의점은 비장애인을 위한 편의점일 뿐 장애인들에겐 '불편의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면적이 '50㎡ 이하'인 매장엔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며 “대부분 편의점이나 카페는 면적이 50㎡ 이하인데, 이건 국가가 장애차별을 허용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등편의법은 면적을 기준으로 50㎡ 이하 사업장에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50㎡ 이하라는 기준도 지난 2022년 5월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바꿔 기존 기준인 300㎡보다 강화한 겁니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들은 시행령 입법예고 당시 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에 예외를 두는 건 정부가 장애인 접근권을 막고, 장애인 접근불가 시설을 합법적으로 늘리는 일이라고 규탄한 바 있습니다. 편의점이나 카페 등 편의시설은 '면적 기준' 없이 일괄적으로 편의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유진우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활동가는 “동네 편의점들은 출입구가 계단으로 된 곳이 많고, 편의점에 들어가도 통로가 매우 좁아 휠체어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해 물건을 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입구에서 그냥 사장님을 불러 사려는 물건 좀 가져다 달라고 하는 등 곤란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식당을 가려면 일단 지도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찾아본다”며 “지도 사진을 보고 출입구가 너무 좁거나 계단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막상 가보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소송에서 주목할 점은 인식 개선입니다. 지난 2018년 장애인들은 정부와 GS리테일을 비롯해 투썸플레이스, 신라호텔 등까지 포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단, 투썸플레이스와 신라호텔은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장애인 접근성을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본안 소송까지 했던 GS리테일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받아들였습니다. 장애인 접근권은 비장애인에겐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실생활에서 심각한 불편을 느끼며 삽니다. 6년간 진행된 소송은 장애인들의 외침에 모두 귀 기울이고, 문제를 개선하자는 데 공감대를 조성한 일입니다.
다만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 소급적용, 면적에 관계없이 편의시설을 의무화하는 것 등은 결국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들이 대법원 소송까지 진행하면서 국가의 책임·의무를 따지는 이유기도 합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출입구 앞에 턱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부 개선된 내용들이 있지만, 편의시설 설치 면적 기준 등은 소급적용이 안 돼 실제 접근성 개선 효과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개변론을 하는 대법원조차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미비한 장소라는 게 씁쓸한 현실”이라며 “장애인등편의법 등은 10~20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제조항 추가 등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접근권은 '예산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가 아니라 기본권 문제”라고 부연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박만규 인턴기자 mankyu@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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