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 영국과 프랑스가 총선을 치렀다. 양국 총선의 전개와 결과는 꽤 닮았다. 극우파가 초유의 선전을 했다. 원외에 있던 영국 개혁당은 14.3%를 얻으며 득표율 3위에 올랐다. 프랑스 국민연합은 1차 투표에서 득표율 33%로 1위를 달렸다. 그러나, 양쪽 다 '좌파 승리'로 끝났다.
영국의 모든 의원은 소선거구-단순다수제로 선출된다. 좌파 노동당은 33.8% 득표율로 의석의 63.4%를 가져갔다. 개혁당이 보수당의 표밭을 가른 덕분이다. 반면 개혁당은 의석의 0.8%만 챙겼다. 프랑스에서는 좌파연합인 신인민전선이 30%를 조금 넘는 의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되었다. 국민연합은 중도를 표방한 범여권 '앙상블!'에게도 밀려 제3당에 머물렀다. 프랑스는 소선거구-결선투표제다. 국민연합은 결선에서 반-극우 연합을 넘지 못했다.
극단주의를 제어하려면 소선거구제가 좋다는 주장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은 얼핏 그것을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양국이 북·서유럽 국가 대다수처럼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였다면, 영국 개혁당은 제3당으로 뛰어올랐을 테고 프랑스 국민연합은 제1당에 등극했을 것이다. 소선거구제가 극우 앞에 걸림돌을 놓은 셈이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소선거구제의 앞날도 그럴 수 있을까. 비례대표제였다면 과연 극우는 더 큰 이익을 보았을까.
극우가 걸림돌을 넘어서는 대로 소선거구제와 양당제는 극우의 디딤돌이 된다. 양당제는 2개의 유력 정당으로 구성되지만 현재의 유력 정당이 미래에도 양당제의 축이라는 법은 없다. 옛날 영국 노동당이 자유당을 밀어냈듯 훗날 개혁당이 보수당을 제친다면, 남아 있던 보수당 지지층도 개혁당으로 흡수될 것이다. 프랑스에선 이미 극우와 급진좌파가 전통우파 공화당과 전통좌파 사회당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두 정당은 2017년 총선에서 결선 진출이 힘겨워진 이후 하락일로에 빠졌다. 비례대표제였다면 지지율이 다소 떨어져도, 지지율만큼 받은 의석을 재기의 발판으로 쓸 수 있는데 말이다. 결국 사회당은 급진좌파의 보조 파트너가 되었고, 공화당은 극우와 연대할지를 두고 내분에 휘말렸다.
프랑스 정당체제는 급진좌파-중도-극우로 '삼극화'되었다. 과반 의석을 가진 세력이 없는 동시에, 3대 세력 중 2개 세력이 연합할 가능성도 희박하면, 정부와 국회는 만성적 여소야대 속에서 표류한다. 여타 정당이 성장할 여지가 비좁기 때문에 정당체제 재편도 요원하다. 다양한 정당이 경합하면서도 협상과 연합이 이뤄지는 '온건다당제'와는 전혀 다른 구도다. 대선거구-비례대표제보다 소선거구-결선투표제가 정치 안정에 유익하다는 통념이 프랑스에서 부서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선 이미 소선거구-단순다수제와 양당제가 극단주의를 더 키웠다. 다당제에서 극우파는 집중 견제를 받기에 단독 집권은 물론 연합 집권도 매우 어렵다. 오른쪽 구석에서 탈출하기 위해 복지 확대나 친환경 같은 의제로 연성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반면 양당제의 극우파는, 당내 소수파일 때는 억눌려 지내지만, 당내 다수파가 되면 그 거대 정당을 극우로 이끈다. 트럼프 세력이 공화당에서 해 보인 것이다.
둑은 터지고 난 다음에는 둑이 아니다. 정치판 절반이 트럼피즘에 잠긴 미국에서 소선거구제와 양당제의 몰골은 가련하다. 양당제라는 둑보다는 온건다당제라는 범람원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선거제 개혁만으로 온건다당제가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가 아니면서도 온건다당제를 지탱하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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