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건강보험을 둘러싸고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제3보험 시장에서 손보업계와 달리 자체적으로 위험률을 적용할 수 없던 생보업계가 그 한계를 극복한 것인데요. 매출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던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 조정을 앞둔 생보업계가 그 돌파구로 건강보험 매출 확대를 노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한화생명, '반값 건강보험' 선점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 1월 새로운 위험률을 적용해 가격을 낮춘 'The H 건강보험'을 출시했습니다. 같은 달 신계약건수 11만500건 중 31%인 3만6000건을 이 보험으로 채웠는데요. 지난 6일 기준 누적 판매 건수는 10만건을 기록 중입니다.
한화생명은 올해 처음 적용된 '뇌·심장 신 위험률'을 적용해 보험료를 50~60% 낮추며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그동안 생보사는 뇌·심장질환 위험률을 책정할 수 없어 손사 대비 비싼 보험료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지난해 말 보험개발원은 뇌와 심장질환 관련 위험률을 만들어 생보사들에 제공했습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이전에 있었던 보장 내용을 조금 달리하거나 더 세분화하고 보상 금액도 높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보험보다 보상 금액을 더 높이고 싶은 고객을 대상으로 업셀링(Up selling) 형태의 영업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비슷한 보장 상품 문의를 했던 고객들이 올해 절반으로 떨어진 보험료를 보고 가입한 만큼 신규 고객도 상당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교보생명도 올해 뇌와 심장질환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을 새로 출시했습니다. 삼성생명은 기존 건강보험 상품에서 암 진단과 치료 보장을 확대한 건강보험을 내놨습니다.
수익성 경쟁 치열해진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건강보험 상품에 힘을 주는 이유는 건강 보장성 상품이 수익성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후 보험사 실적은 보험사 미래 이익인 보험계약마진(CMS)이 중요한데, 건강보험은 이 마진 측정에 유리합니다.
특히 올해부터 생보사도 건강보험료를 측정할 때 보다 세부적인 통계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경쟁력 있는 가격 책정에 들어갔습니다. 뇌와 심장 관련 건강보험 상품은 그동안 손보사들이 주력으로 팔았기 때문에 자체 위험률을 갖고 있었지만, 생보사들은 정부의 국민 통계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요.
보통 보험사가 보험상품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위험률 통계는 국민 통계, 산업 통계, 보험사 가입자 통계 등 총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정확한 가입자 통계를 사용해 상품을 개발하면 그만큼 위험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보험료가 낮아집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회사의 히스토리를 담은 위험률은 신체적·환경적·도덕적 위험을 걸러낸 '언더라이팅'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양질의 통계"라며 "관련 통계가 부족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던 생보사들은 보험개발원으로부터 제공 받은 위험률 관련 세부 통계를 쓸 수 있게 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생보사는 자산과 매출에서 손보사보다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먹거리 고민이 큰데요. 그 배경에는 고령화로 인해 종신보험 인기가 줄어들고,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 메리트가 없어진 것도 한 몫 합니다.
아울러 법인보험대리점(GA) 시장이 커지면서 여러 회사의 상품과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높은 생보사 상품은 가격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보사들이 하나 둘 건강보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손보사들과 경쟁이 더 격화할 전망입니다.
생보업계 다른 관계자는 "당사의 경우 단기납 종신보험 수익 비중이 높진 않지만 저출산·고령화로 높은 보험료를 장기간 납부하며 묶어둬야 하는 종신보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건강보험을 포함해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상품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화생명 사옥. (사진=한화생명)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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