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만기가 돌아오면서 투자자 손실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2021년 평균 약 1만선을 유지한 H지수는 최근 5500대 아래로 폭락했는데요. 은행권에서만 올 상반기 9조2000억원 규모의 만기가 전망되는 만큼 금융권의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입니다.
금융당국은 ELS 상품 관련 TF팀을 꾸리고 지난 8일부터 주요 판매사 12곳에 대한 현장검사에 돌입했습니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은행이 상품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고객에게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은행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조직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일례로 한 시중은행에서는 은행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 총점 중 고위험 ELS나 주가연계신탁(ELT) 등을 판매했을 때 얻는 점수비중이 높아 직원들에게 ELS 판매 확대를 유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100%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면 문제입니다. 하지만 대규모 손실이 불거질 때마다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벌써부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말마따나 "80~90%의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더 나오고, 10~20%의 확률로 완전히 손실을 볼 수 있어 위험한 상품"이라면 거꾸로 얘기하면 손실 확률이 10~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수익이 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손실이 발생하니 불완전판매로 몰고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금감원의 현장검사 결과와 당국자 발언을 보면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마치 불완전판매로 단정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ELS는 금융투자상품이기 때문에 투자자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종 투자 결정에 대한 수익이 오롯이 투자자 본인의 것이라면 투자 실패도 본인 책임입니다. 당국이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를 통해 금융사 적합성 원칙을 따져보되 금융시장의 근간인 자기책임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현명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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