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정부가 하반기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은행들은 주수익원인 이자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가계대출 총량제 시행으로 대출 관리를 강하게 압박할 때에도 은행들은 견고한 이자이익으로 역대급 실적을 이어간 바 있습니다. 은행들은 예대금리차 확대로 이자이익 방어에 나선 반면 금융소비자들의 이자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은행권 "역대급 실적 끝"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당기순이익 전망치는 9조9685억원으로 전년 동기 9조3451억원 대비 6.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인데요. 일각에서는 순이익이 1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은행권이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는 것은 그룹 핵심 자회사인 은행의 예대마진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발 맞춰 가산금리를 통해 높은 수준의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 금융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정부가 앞서 6.2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 금융권의 정책대출 제외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당초 계획 대비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올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올 초 설정했던 규모의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당초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치를 약 7조2000억원으로 잡았으나, 대책 발표 이후 절반 수준의 목표치를 금융당국에 제출했습니다. 은행권의 역대급 실적 잔치는 올 상반기가 마지막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대출자산 증가폭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실적 증가세가 꺾일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내 대출상담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자이익 증가세 견고
비상이 걸린 은행들은 사실상 하반기 경영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가계대출을 줄여야 하는 만큼 경영 전략 수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실적 감소를 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출금리 인상이나 기업대출 비중 확대 등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출 자산 축소가 이론적으로는 은행 실적에 악재로 작용하지만, 실제로 실적 악화로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20개 국내 은행의 2014~2024년 실적발표를 보면 은행들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총 423조6000억원에 달하는데요. 연도별 이자이익은 2014년 34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59조3000억원으로 10년간 24조4000억원이 늘었습니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제를 시행한 2021년과 2022년에도 은행들은 이자이익을 늘리며 역대급 실적을 이어갔습니다. 2021년 당시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재인정부는 가계대출 총량제를 시행해 대출 관리에 전념했고, 대출 증가율이 꺾인 바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총량제는 폐지됐으나 지난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사실상 부활시킨 바 있습니다.
총이익(이자이익+비이자이익) 대비 이자이익 비중도 10년 전 대비 치솟았습니다. 2014년 89.5%에서 2022년 94.3%까지 오른 이후 지난해에는 91.0%를 기록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꾸준히 80% 유지했지만 2022년부터 급격하게 뛰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예대금리차 늘려 실적 방어
하반기 대출 규제 강화로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이 나옵니다. 예금금리는 은행의 조달비용, 대출금리는 수익으로, 예대금리차는 곧 은행의 이익인데요.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2.54%로 전달 대비 0.09%p 하락했습니다. 코픽스는 주요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데, 코픽스가 떨어진다는 것은 변동형 주담대 금리가 더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코픽스가 최근 3년 간 최조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주담대 금리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로 은행권이 가계대출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도 주담대 등 은행 대출금리는 되레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인상하고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끌어올린 탓입니다. 은행 대출금리는 보통 시장금리에 따라 움직이는 준거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산정됩니다.
가산금리는 인건비, 점포 임대료 등 은행의 비용에 이익을 더한 값으로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책정하는데요. 은행이 가산금리를 인상하고 우대금리를 축소할수록 대출금리가 오르는데, 동시에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은행 이익도 늘어납니다.
은행들은 이미 주담대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접수를 줄줄이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대출이 받기 힘들어지고 희소성이 높아질 수록 가격은 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정책 기조를 보이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가산금리를 인상할 명분을 얻은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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