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 만약 나눌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요
. 신년을 맞아 철학적인 질문으로 문을 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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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실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뛰어가 보니 자폐성 장애인 아들이 비장애 쌍둥이 누나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휘어 잡고 있었습니다. 쌍둥이 대전이 발발한 겁니다. 딸은 머리카락 잡은 손을 놓으라며 소리를 질렀고, 아들은 울면서도 손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딸이 아들 등을 때리며 소리 질렀습니다. “이 쓸모없는 놈아!”
차라리 욕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딸의 말을 들으며 놀란 순간 아내가 아이들에게 돌진하는 게 보입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두 녀석 모두 혼을 크게 냈습니다. 아들은 누나 머리카락 잡은 걸 사과해야 했고, 딸은 아들 때린 걸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한 번 더 혼이 크게 났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앞으로 한 번만 더 동생에게 그런 소리 해 봐!”
그 얘길 하는 아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웃고 소리 지르고 밥 먹기 밖에 할 줄 모르는 아들이었기에 “이 쓸모없는 놈아”란 딸의 외침을 그냥 넘어갈 수 없던 겁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학창 시절엔 부모님 기대에 충족하는 성적을 내지 못해 쓸모없는 놈이 되기도 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를 ‘쓸모 없다’ 여겼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부모님 몰래 수능을 다시 준비해 막연하게 꿈꾸던 영화연출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원서를 냈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은 후에야 부모님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보라고, 나도 한다면 한다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것에 있어선 쓸모 있는 녀석이라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 졸업을 앞두곤 영화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유명 감독 밑에서 ‘조연출’이란 이름으로 있었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현장에서 유무형의 폭력행위가 용인되던 시절입니다. 언어적 모욕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유무형의 폭력을 당할 때마다 난 쓸모없는 놈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대학도 바꿔 갔는데 지금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영화 현장을 떠났습니다. 대신 영화를 보고 글로 기록하는 기자가 돼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후로 한 사람의 남편이 됐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됐으며 두 아이 가운데 한 아이는 장애인이 됐습니다. 아들이 발달 장애인이라는 건 생각보다 무거운 책임이었습니다. 과거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 애썼다면 ‘장애인의 아빠’로 있으면서는 타인의 인정보다 매달 단돈 1만원이라도 더 벌어오는 일자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 쓸모없는 놈아”란 딸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아니 사실은 다음에 이어진 아내의 말입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있고 쓸모없는 사람이 있다고.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만 한다고. 내 쓸모를 정하는 건 타인의 평가라고. 그래서 그렇게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는 아들이지만, 아들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쓸모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충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나 자신의 쓸모를 타인의 평가에 가둘 필요가 없던 겁니다. 이미 나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동료로서, 누군가의 친구와 이웃으로서 존재 자체가 쓸모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쓸모 있는 사람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습니다”고 자신 있게 말하겠습니다. 쌍둥이가 신년 초부터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 덕분에 아빠인 제가 큰 깨달음 하나를 얻어갑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는 이미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쓸모’라는 사실을 모두가 가슴에 품고 희망찬 새해를 그려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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