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사우디 리야드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포럼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이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재계가 중동 특수를 기대하면서도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로 각종 의사표현이 민감해진 시점인 데다, 총선을 앞둔 국면이라 성과내기에 집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국내외 경기가 워낙 부진해 반전이 필요한 만큼 중동순방을 바라보는 재계 심경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23일 현지에서 전해져온 사우디 방문 성과는 20조원가량의 계약 또는 양해각서(MOU)입니다. 지난해 말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방문해 이뤘던 40조원가량 성과에 더해지는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40조원 협약도 아직까진 호재로 간주될 만한 대규모 수주성과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경과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진 와중에 중동 순방을 강행한 데 따른 저항감이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20조원 사우디 방문 성과 중 MOU를 넘은 실질 투자 계약은 현대차의 자동차 조립공장 설립 건이 대표적입니다. 사우디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연산 5만대 규모 중동 첫 생산 거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는 해외투자인 만큼 수주를 통한 국내 경제적 수혜로 이어지는 데는 다소 거리감이 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에 이어 이번엔 사우디에 퍼주기 투자냐는 반감마저 보입니다.
현대차가 추후 중동에서 판매량을 늘리면 경제적 효과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계약 내용을 보면 투자 메리트에 대한 의문도 낳습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70% 지분을 가져가고 현대차가 30%로 경영권을 양보합니다. 정작 신공장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함께 만드는데 현대차가 고도의 자동화 공정 및 지역 맞춤형 설비를 적용키로 했습니다. 자연히 기술유출에 대한 걱정을 자아냅니다.
앞서 현대차가 국내 대규모 전기차 생산 투자를 약속했지만 미국을 비롯해 중동까지 투자여력도 분산됩니다. 비록 연산 5만대는 크지 않은 규모지만 최근 금융경색과 전기차 판매 둔화로 현대차의 자금사정도 좋지 못합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순방엔 정치적 생리가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야당에선 R&D 예산을 줄이면서도 대통령 순방 예산이 과도하단 지적을 하는 가운데 짜내기식 공수레 MOU에 대한 불신도 여전합니다.
재계에선 중동 사업이 국내 기업에 과도한 출자를 요구하는 식이라며 실속 없이 끌려다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빈 살만 방한 후 실질 사업을 따져보니 국내 기업에 과도한 출자를 요구했다”며 “과거에도 사우디가 여러 사업 발주를 약속했지만 영양가 없이 끌려다니는 듯한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총선을 앞둔 데다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한 터라 이런 시기 순방은 공연한 의심을 키운다”고 꼬집었습니다.
물론 재계는 석유 사양화로 사업다각화가 필요한 사우디에 기회가 있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더욱이 국내외 유동성 악화로 기업 줄도산 위험마저 번지고 있어 중동 성과로 분위기 반전이 이뤄지길 간절히 고대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성과가 미진하고 사업 내용에 허실이 많았어도 우리가 경쟁국에 앞서 비즈니스 기회가 많은 중동과 관계를 다지고 수주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엔 전략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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