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를 확대하는 등 보행자 보호의무가 강화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첫날인 12일, 대부분의 시민들은 보행자 안전 우선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반기면서도, 애매한 기준 탓에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했다.
경찰청 등이 발표한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모든 운전자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통행하는 때' 뿐만 아니라 '통행하려고 할 때'에도 일시정지해야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보행자 통행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일시정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승용차는 범칙금 6만원(승합·화물차 7만원)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이날 오후 12시 쯤 기자가 살펴본 서울 관악구 당곡사거리의 한 교차로에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 우회전을 하려던 차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이후 보행자가 건너편 인도에 다다르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30분 쯤 우회전 차량을 지켜본 결과, 약 20대 차량 가운데 2대 정도가 개정법을 지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개정안 시행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이날 당곡사거리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이용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30대 남성 정모씨는 "운전할 때는 불편하긴 할지라도 보행자 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강덕자(76)씨도 "과거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량이 갑자기 들어와서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면서 "초록불일 때 (차량이) 멈추고 안들어오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바뀐 법 기준에 애매한 부분이 있어 운전자가 완벽히 지키기 어렵더라도 방향성은 옳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관악구에 사는 60대 여성 김모씨는 "막 법이 변경돼 초반에는 지키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이라며 "우리같이 걸음이 느린 사람들에겐 보행자가 모두 건널 때까지 차량이 기다려 주면 조금 여유가 생긴다"고 개정안 시행을 반겼다.
같은 지역 주민 50대 여성 김미혜씨는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건너가려 할 때'도 정지해라 이 부분이 좀 애매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이런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우회전하는 운전자가 존재했다"면서 "지나가는 게 위법이란 걸 인지하고 있는 자체가 이런 습관을 자제하게 만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만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할 때'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운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우회전 할 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경우에만 정지하면 됐지만, 이제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지 까지의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정법 기준을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날 관악구에서 만난 업무 상 운전을 자주한다는 회사원 이모(30)씨는 "운전자가 건너가려 하는 사람이랑 단순 서있는 사람이랑 어떻게 판단해야 되는지 참 의문"이라면서 "우회전 할 때 보행신호가 초록불이면 지나가지 못하도록 개정하든지 등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보행자가 건너갈 것 같아 정지해도 뒤차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아 경적을 울려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회전 차선에 있는 직진 차량이 앞에 막힌 차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운전 7년 차라고 밝힌 정모(29)씨는 "우회전 시 사람이 건너고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건 당연하지만, 개정법의 애매한 기준 탓에 보행신호가 초록불인 동시에 사람이 없어도 차를 정지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며 "이때 우회전 차선에 있는 직진 차량이 급하게 왼쪽 차선으로 끼어들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부터 1개월간 계도·홍보 위주의 안전활동 기간을 지정해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법 개정 사항이 교통문화로 정착될 때까지 홍보영상, 현수막, 카드뉴스 등 적극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도로교통법 시행을 통해 횡단보도 앞에서는 항상 보행자가 있는지 살피며 운전해야 한다"며 "보행자가 차보다 우선한다는 문화를 정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 관악구 보라매동 당곡사거리 교차로 앞에 도로교통법 개정에 대한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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