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현대중공업이 상장한다.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잇따르는 수주와 신조선가 상승으로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공모가도 비싸지 않아 보인다. 다만 현대중공업 상장으로 입지가 애매해진 한국조선해양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7일과 8일 코스피 상장을 위한 공모청약을 진행한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지분 100%를 한국조선해양이 갖고 있지만, 이번에 1800만주 신주를 발행해 공모를 마치고 나면 한국조선해양의 지분율은 약 80%로 감소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사진/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공모에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조선업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전망에 근거한다. 선종을 가리지 않고 선주들의 발주가 이어지면서 현대중공업은 일찌감치 올해 수주 목표를 뛰어넘었다. 메리츠증권은 8월 현재 현대중공업의 수주액을 108억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연초 가이던스 대비 150%를 넘어서는 성적이다.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초기엔 저가 수주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신조선가 상승세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은 물론 국내 조선사들은 모두 상반기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선박을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후판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후판 등 철강제품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현대제철 등은 하반기 후판가격을 톤당 약 30만~40만원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이를 미리 2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6월말 기준 강재 발주 예정물량에 대한 공사손실충당금(공손충) 등 약 4000억원을 2분기 실적에 포함시킨 것이다. 충당금 설정비율은 평소보다 훨씬 높은 13.6%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은 상반기 345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더구나 하반기 후판가격이 추가 인상될 가능성도 있어 올해 연간 실적은 적자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도 조선주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것은 올해 수주 상황을 감안했을 때 내년부터는 확실한 턴어라운드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금액은 건조 진행률에 따라 나눠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대중공업이 맺는 대부분의 계약은 전체 금액의 60~80%를 배를 인도할 때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배를 건조하는 데는, 컨테이너선이 짧게는 8개월에서 드릴십 같은 배가 2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수주가 나온 올해부터 1년만 지나면 선박인도도 증가해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원자재가 상승분은 공손충으로 미리 반영했기 때문에 후판 가격이 지금보다 더 인상되는 경우에만 추가 상승분이 잡힐 것이다.
SK증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과거 2017년에도 평소보다 많은 금액의 공순충을 반영한 일이 있는데 당시 4분기 실적에 연간 수주량에 대해 한 번에 공손충을 설정했다. 이번엔 기존 수주량에 대해서도 공손충을 설정했다는 설명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국면도 수출을 주로 하는 조선사에게는 나쁘지 않다. 다만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될 경우엔 발주가 미뤄지고 신조선가도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요인은 있다.
현대중공업의 공모가도 무난하다는 의견이 많다. 수년간 순이익을 내지 못해 주가수익비율(PER)을 참고할 수는 없지만, 과거 정상 영업을 할 때의 이익과 현재 자산 규모, 여기에 예상 시가총액을 대입해 봐도 주가가 비싼 편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희망공모가 범위를 5만2000~6만원으로 제출했다. 공모가가 희망가 상단으로 정해져도 시총은 5조3000억원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다. 현재 삼성중공업(3조9501억원)과 대우조선해양(29129억원)과 비교해서, 또 글로벌 1위 조선사라는 프리미엄까지 얹어준다면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현대중공업만 보면 괜찮아 보이는데 문제는 현대중공업그룹 내부에 있다.
지금은 글로벌 1위 조선주에 투자하려면 한국조선해양을 통해서 간접투자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냥 현대중공업을 매수하면 된다.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을 압도적 지분으로 지배하는 최대주주라는 사실은 상장 후에도 변함이 없으나 한국조선해양 투자자의 시선으로 보면 조선주 투자자금을 현대중공업과 나눠야 하는 꼴이 된다.
실제로 국내 조선주에 투자되어 있는 글로벌 자금도 현대중공업 상장 후에 이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국조선해양에 대한 투자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대중공업 위에 한국조선해양 위에 현대중공업지주가 있고 현대중공업지주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도 마뜩찮다. 한국조선해양이 국내외 조선사와 신재생에너지업체 등을 지배하고 있으나 투자하기엔 애매한 위치다. 조선주에 투자한다면 현대중공업이나 현대미포조선을 고르는 게 직관적이고, 대주주의 이익과 함께할 목적으로 지주사를 선택한다면 현대중공업지주가 더 나을 수 있어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심각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본확충이 예상돼 일단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만일 조선업체만 모아서 투자하길 원한다면 중공업 상장지수펀드(ETF)라는 좋은 대안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문제도 변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1월 산업은행과 인수 합의서를 체결한 후 6개국에 기업결합 승인을 신청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EU, 한국, 일본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일부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된다고 해도 그게 언제일지,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국조선해양 아래로 편입될 것으로 예상돼 이 또한 한국조선해양에게는 우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이 시장에 퍼지면서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도 연일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같은 우려가 과도하다고 판단됐는지 외국인들은 한국조선해양을 연일 매수 중이다. 8월부터 지난 3일까지 86만주, 1000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순매도한 날이 5영업일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공모 청약은 7일과 8일에 진행된다. 공모가는 6일 중에 확정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주관사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며 하나금융투자, KB증권, 삼성증권, 대신증권, DB금융투자, 신영증권에서도 청약할 수 있다.
공모주 1800만주 중 일반 청약자 몫은 450만~540만주이며. 이중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가장 많은 142만~170만주가 배정될 예정이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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