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급전 대출을 해준다는 말에 속아 자신의 체크카드를 보이스피싱 일당에 넘겨줬더라도 이 과정에서 대가성이 없다면 무죄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 자신의 체크카드를 대여해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 중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부분을 파기하고 이를 제주지법에 되돌려 보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A씨가 성명불상자(보이스피싱 조직원)로부터 향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을 대가로 약속하고 성명불상자에게 접근매체(체크카드)를 대여한 것으로 보고,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며 “이 같은 원심 판결에는 ‘전자금융거래법’ 6조 3항 2호에서 정한 ‘대가를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 및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는 대출금 및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성명불상자의 기망으로 카드를 교부한 사람으로서 A씨가 대출의 대가로 접근매체를 대여했거나 카드 교부 당시 이러한 인식을 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보았다.
A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은 자일뿐, 전자금융거래법상 '대가를 약속한 경우'에 해당하거나 접근매체(체크카드) 대여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A씨는 2019년 6월 체크카드를 보내주면 2000만원 이상 대출해준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체크카드를 전달했다.
검찰은 A씨의 접근매체(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됐다는 점 등을 들어 A씨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3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은 이 사건을 A씨가 2015년 지인들에게서 1억8000만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된 사기 사건과 병합해 심리했다.
2심 재판부는 “1·2원심판결의 각 죄는 형법 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법 38조 1항에 따라 하나의 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1?2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했다.
다만 “A씨는 접근매체(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등의 추가적인 범행에 사용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범행의 성립에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A씨에게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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