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아내는 저서 ‘배려의 말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상적인 삶이 진짜 밀도 있는 행복한 삶이다. 다만 일상적이기에 그 일상을 잃기 전엔 행복이 행복임을 모를 뿐.”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이어짐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상실된 삶을 살아가며 힘겨워하고 있다. 일상이 살아진 경험은 개인적으론 사실 두 번째다. 20년도 훨씬 전이었다. 군복무 시절 얘기다. 신성한 군복무 시절이라지만 곤욕스럽다 못해 고통스러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구타와 폭언이 판을 치던 시대에 군 생활을 한 내게 당시는 지옥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왜 따뜻한 우리 집 내 방이 아닌 곳에 누워있는지 공포의 공포가 꼬리를 물고 머리를 휘 집어 놨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자각한 뒤엔 “제발 오늘 하루도 잘 버텨주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2년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따뜻한 우리 집 내 방에서 눈을 떴다.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은 기쁨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가 됐을 때의 기쁨과 비교한다고 해도 고민해야 할 정도다.
백신이 상용화돼도 ‘코로나19’는 영원히 종식되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22년까진 마스크 쓰는 일상이 이어질 것이란 보도 역시 나오고 있는 지금이다. 활동에 제약인 생긴 모두는 갑갑한 마음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만 터트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 속에 모든 것은 소멸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다만 현실이 힘드니 미래의 희망을 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지옥 같던 2년 2개월이었다. 억만금을 준대도 다시 가기 싫은 군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군 복무의 그 시간이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지옥 같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평범했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따뜻한 내 방에서 눈을 뜬 날부터 다시 시작된 일상을 소중한 마음으로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일상을 잃었던 상실의 경험이 일상을 다시 잘 살아내는 동력의 하나가 된 것이다.
많은 영화에서 악당이 등장한다. 악당은 벼락같이 등장해 순식간에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숨죽이며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히어로가 나타나고, 악당은 패배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는다.
‘코로나19’도 다를 바 없다. 언젠가 백신은 개발될 것이고 늘 그렇듯 인류는 희망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날을 기다리며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내고, 죽기 살기로 삶을 버텨내는 것뿐이다.
일단은 ‘턱스크’ 쓰지 않기부터. 수시로 손을 씻는 것부터. 신은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집에서 기도 드리는 것으로 나와 내 이웃 안전을 지키는 것부터. 젊은 혈기를 밖으로 폭발시키며 모여서 춤추는 대신 혼자서 책도 읽고 사색도 해보는 것부터.
그렇게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 새롭게 또 구축된 일상에 적응해 살아가다 보면 그날은 온다. 우리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일상이 회복된 그 날 말이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며 어른들은 직장,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그런 날을 기다린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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