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동기’ 망각한 비겁자의 변명
2020-06-17 00:00:00 2020-06-17 00:00:00
신혜선 배종옥 주연 영화결백언론 시사회 중이었다. 영화 속 추인회(허준호) 시장의 비릿한 웃음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 기억이 났다. 잊고 지냈던 씁쓸한 기억이었다.
 
몇 해 전 중학 동창 모임 때다. 중학교 시절 지독하게 날 괴롭혔던 녀석을 만났다. 그 녀석 때문에 학교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그 녀석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 못하는 것인지 기억하기 싫어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천진난만했다.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뒤통수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고 하지만 그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 그 속에서 느꼈던 불쾌한 감정은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우스운 일은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했어도 기억은 전혀 다르게 저장된단 것이다. “우리 그때 참 재미있었다고 회상하는 그 녀석 앞에서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뭐가 재미있었단 말인지. 당시 여러 사건들을재미있던 추억으로만 기억하는 그 녀석은 자신의 행동에서라는 동기를 지워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라는 동기가 가슴에 남아 아직까지도 불쾌한 것이고사실 그 녀석에게 20년도 훌쩍 더 지난 그 시절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만나고 며칠 뒤 천연덕스럽게 보험 청탁을 했을 것이고.
 
결백속 악역 추 시장은 자신을 심문하던 변호사 정인(신혜선)에게 비린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지금 피해자 두고 뭐 하는 짓이야라고. 분명 추 사장은 가해자다. 그가 가해자인 것을 영화는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의 비린내 가득한 웃음이 동창 녀석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겹쳤고, 난 몸서리가 온몸을 휘감았다.
 
“맞은 놈은 기억해도 때린 놈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도대체 때린 놈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행동을 유발시킨 어떤 동기가 있겠지만 그 동기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타인도 설득시킬 만큼 정당한 동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당당할 수 없는 동기로부터 유발된 행동은 아예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거나 적반하장의 전혀 다른 상황인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부적절한 동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이 사방에 넘쳐난다. 자식을 가방에 넣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목줄을 채워 다락방에 가두기도 한다. ‘왜 그랬냐는 질문엔 그저 훈육이란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라는 동기 앞에서 때린 자신이 아닌 맞은 자식 핑계를 댄다. 자신의 동기를 타인에게 미뤄버리는 그 동기는 과연 정당성의 범위에서 존재해야 할까.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한 조주빈도 그랬다. 분명 행동한 것은 자신이면서 자신의 악행을 중단시킨 경찰에 감사를 표했다. 자신의 행동에서 스스로의 동기 부분은 쏙 빼버렸다.
 
모든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 앞에 자유롭기 위해선 행동에 대한 동기부터 정당해야 한다. 정당하지 못한 동기로 움직였을 때 타인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평생을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비겁자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 비겁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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