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에도 '노동자 블랙리스트'
하청 노동자 절반 "블랙리스트 존재"…"재취업은 물론 산재 신청도 어려워"
2017-09-07 16:45:44 2017-09-07 16:45:44
# 조선소 하청업체를 전전하며 30년간 용접공으로 근무한 A씨(56세). 그는 2007년 6월 근무하던 하청업체가 파산하면서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동료 44명과 함께 농성을 했다. 이후 2015년 10월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조선소에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전산실로부터 2007년 있었던 농성 기록이 지워지고 나서야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
 
#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노조 활동을 한 B씨(55세). 그는 올해 4월 다니던 하청업체가 폐업하면서 타 회사를 찾고 있지만 취업 길은 막혔다. 심지어 이력서를 내라고 했던 한 하청업체 사장은 1시간 뒤 물량이 줄었다는 걸 몰랐다며 채용을 거절했다. B씨는 동료로부터 노조 활동 경력 때문에 다들 기피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조선업종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 등을 이유로 원·하청이 관리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용 불안을 겪는 것은 물론 산업재해 신청마저 제때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실태조사팀은 7일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조선소가 있는 울산과 거제 등 전국 5개 지역 조선업 하청 노동자 9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05명(44.4%)이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존재를 모른다'가 412명(45.2%), '없다'가 95명(10.4%)이었다. 또 405명 가운데 48명(9.3%)은 블랙리스트로 취업이나 산업재해 신청 등에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안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뉴스토마토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노동자 48명 가운데 19명은 취업에 대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조나 노조 결성을 위한 모임에 가입했거나, 산재 신청 등의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말했다. 조사팀은 하청업체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원청과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들은 타지역 조선소 하청업체에 취업하려고 해도 채용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권미정 조사팀 연구위원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현장에서 다쳐도 산재 신청을 꺼리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심지어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재취업이 안 되는 사례들을 보면서 정당한 노동권리 주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의원회관 5간담회실에서 열린 '조선산업 하청 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안마련 토론회'는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저지 시민대책위원회, 조선산업의원모임 등이 공동 주최했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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