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평이 재벌개혁 출발점"…장외 여론전에도 재계 침묵만
핀셋증세 국회 입법 눈앞으로…"지금 상황에서 누가 정부와 여론에 맞설 수 있나"
2017-08-17 16:50:47 2017-08-17 16:54:10
'2017 세법개정안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왼쪽부터)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박훈 경실련 재정세제위원회 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 ,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세법 개정안의 국회 입법을 앞두고 ‘전초전’이 뜨겁다. 일부 야당과 보수진영 등에서는 경제활동 위축과 포퓰리즘, 글로벌 감세 추세 역행 등 반대논리를 펼친다. 이에 맞서 시민단체와 학계 등 전문가들은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증세는 소득 분배의 현실적이고 정당성 있는 정책 수단이라며 정부 의지를 재촉하기에 바쁘다. 정작 증세 대상인 재계는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와 반재벌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문재인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20일간의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이달 말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그리고 정기국회에 맞춰 내달 1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조세 형평성을 통한 소득 재분배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재벌개혁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개정안은 초대기업, 초고소득자에 대한 조세감면 축소 및 증세가 골자다.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 과세 확대 등 재벌 총수일가의 지분 승계를 통한 세습도 겨냥했다. 증세가 현실화되면 삼성에서만 상속세 부담이 10조원을 훌쩍 넘기는 등 부담은 상위그룹에 집중될 전망이다.
 
재계는 한껏 몸을 엎드렸다. 재벌 회원사가 주축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정농단 사태로 크게 위축돼 있고, 과세 구간이 초대기업에 한정돼 있어 반대 명분을 쌓기도 힘들다. 70%를 넘나드는 높은 국정운영 지지도와 재벌개혁에 대한 여론의 거센 요구 등도 부담이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 내용은 분명 부담이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세금 인상률 등 복합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증세가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된다면 기꺼이 내겠지만, 그렇지 않고 매몰 비용이 될 것에 대한 납세주체로서의 불안감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그간 증세론이 불거질 때마다 늘어나는 세부담으로 투자와 고용이 저해될 수 있다며 정치권을 압박해왔다. 최근엔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로 투자와 고용을 촉진시키는 글로벌 추세를 들어 증세 반론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의 수위는 분명 과거보다 크게 약화됐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정부와 여론에 맞설 수 있냐"며 "삼성이 처한 현실이 재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 진보적 시민단체는 재계가 숨고르기할 여유도 주지 않고 힘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17일 ‘2017 세법개정안 평가토론회’를 열고 일자리 창출과 소득 재분배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세제개편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발제자로 나선 박훈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은 “상속세와 증여세는 부의 무상이전에 대한 과세로 그 세목 자체가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며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서도 전면과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의 법인세 인하 추세에 역행한다는 재계 반론에 대해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높은 세부담, 사회보장기여금 부담, 복지지출과 큰 정부를 운용해 왔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이 3%포인트 인상돼도 세금·사회보장기여금 부담 면에서 우리 기업들은 경쟁국들에 비해 유리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불평등을 축소해야 하는 정부 역할의 정상화가 당면한 문제 해결과 경제 성장의 가장 중요한 대안”이라며 “법인세 인상은 조세부담률 제고의 ‘출발점’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초대기업 ‘핀셋증세’로 보편적 증세를 외면하는 것은 잘못이란 시각도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각국 정부는 해당국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특정집단(슈퍼리치)에 대한 증세를 시행한 사례가 있다”고 받아쳤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세표준 2000억원 이하인 기업들 중에서도 세부담 여력이 충분한 기업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후 법인세율 인상 대상과 세율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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