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10년을 끈 반도체 백혈병 논란이 벼랑 끝의 삼성 앞에 다시 섰다.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 문자에서 백혈병 피해자가족 변호인에 대한 ‘티켓 로비’ 정황마저 드러났다. 오는 25일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를 앞둔 삼성으로서는 혹여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까 여론 동향을 살피고 있다.
백혈병 논란의 시작점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씨가 2005년 6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뒤 사망하면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2007년 6월 황씨 유가족이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하면서 추가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재 신청과 행정소송이 줄을 이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반도체 사업과 백혈병이 무관하다며 일축했고,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가 발족한다. 현 '반올림'(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전신이다. 반올림이 삼성전자와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한 것은 2013년 12월이 돼서야 가능했다. 7년여 만에 겨우 진전 기미를 보이던 협상은 그러나 2014년 4월 양측의 입장이 틀어지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2014년 4월17일 이건희 회장이 6개월여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고, 다음달 1일자로 ‘돌발 인사’가 단행됐다. 미래전략실 소속 팀장급 주요 인사들이 삼성전자로 전진 배치됐다. 전 미전실 소속 관계자는 당시 인사 배경에 대해 백혈병 문제를 전향적으로 대처하라는 지시가 함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계열사 문제를 그룹에서 대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원격 지원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특히 삼성전자가 사과하면 법적 책임으로 커질까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등이 관객들 입소문을 타면서 여론도 극도로 악화됐다. 삼성은 미전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었던 이인용 사장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 이동시켜 백혈병 문제를 전담시켰다. 2000년대 중·후반 삼성특검을 거치면서 대처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다시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인사가 있은 지 14일 뒤 삼성전자는 백혈병 논란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놨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와 보상 약속을 했다. 삼성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반재벌 정서, 특히 삼성을 향한 부정적 여론은 향후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 중심에 백혈병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협상은 각종 난항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면서 문제 해결의 의지도 약화됐다. 삼성은 2015년 7월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1000억원 규모의 공익재단 설립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해 9월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후 반올림을 제외하고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와 따로 협의해 자체 보상을 추진했다.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올 초까지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리교섭을 진행했지만 결국 파행됐다.
삼성은 다시 물밑 방식으로 회귀했다. 삼성이 백혈병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변호인에게 고가의 공연티켓을 지속적으로 제공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일파만파 커졌다. 반올림은 삼성이 변호사를 회유해 백혈병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 지으려 한 증거라며 11일 규탄 성명을 내고 삼성전자를 형법상 뇌물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해당 변호사는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를 대리해오다 지금은 삼성 반도체 라인 문제를 진단하는 옴부즈만위원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반올림은 삼성 측 보상위원회에서 배제된 피해자들 개별 보상을 요구하며 10일까지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67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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