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순실의 시대와 배신의 정치, 대통령 결단해야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2016-11-04 08:00:00 2016-11-16 14:30:08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입니다.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서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서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조속히 밝혀야 합니다.”
 
지난 2014년 11월 30일 일명 ‘정윤회문건유출사건’ 당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내 뱉은 발언이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헌정 이래 최악의 대통령 스캔들을 지켜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저 말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허탈과 자괴감, 수치심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더욱이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례들을 보면 갈수록 상상을 넘어서는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 최순실에 의해 저질러진 희대의 국정농단 일탈행위들을 매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신뢰까지 흔들고 있다. 더불어 1987년 민주화 항쟁이후 쌓아온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마저 추락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나 들어봤던 일해재단의 재벌 쥐어짜기 모금행태가 2016년 최순실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최순실 자녀의 이화여대 입학특혜시비, 대통령의 연설문 첨삭지도논란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스포츠정책, 장관인사, 국방·외교·통일 등 전 분야에 걸친 전방위적 국정관여는 그야말로 경악스럽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에 따르면 최순실과 그 관계자들은 군사기밀보호법위반죄, 외교상기밀누설죄, 공무상기밀누설죄,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죄, 뇌물공여죄, 제3자 뇌물공여죄, 업무상 횡령죄, 배임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범죄혐의를 받고 있다.
 
그 만큼이나 대한민국 정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든 최순실의 권력은 일명 ‘순실의 시대’로 일컬어질 만큼 막강하고 막장이었다. 이러한 막장권력을 뒷받침 해준 박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그 행사는 헌법에 따라 공명정대해야하며 철저히 국민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또는 지킬 수 없는 대통령이라면 한시도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법령집행권, 국군통수권,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공무원 임면권, 외교에 관한 권한, 법률 제정에 관한 권한, 명령 제정권, 일반사면권, 특별사면권, 법관 임명권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주요권한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원수다.
 
따라서 대통령의 정책판단과 의사결정은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대통령 권력의 사유화되고 남용된다면 그 해악의 수준은 여타 일반범죄에 비할 수 없이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다.
 
이미 박 대통령의 스캔들은 국가시스템과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시킨 희대의 사건으로 정치적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임계치를 완전히 넘어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어떠한 소통 없이 새 국무총리를 내정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현 정국에 대한 상황인식수준과 소통능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제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최순실이나 대통령 자신과 관련해 입에 담기조차 힘든 온갖 종류의 소문과 추측들이 넘쳐나고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내내 제기되었던 불통(不通)의 문제는 이젠 국민의 절통(切痛)으로 귀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최순실과 함께 저지른 국정농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추락한 국격과 국민의 분노, 절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심판해 달라"던 2015년 6월 25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의 박 대통령 발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배신에 치를 떤다던 대통령이 이번 스캔들로 대한민국 국민 전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 정치의 끝판을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하루빨리 현재의 국정 마비와 국가 대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분노에 찬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고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혀라.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이 뽑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최소한의 도리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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