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준상기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됐지만, 아직 가시적 효과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연금자산 운용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개원 19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원장은 “퇴직연금사업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다보니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가 취약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가입자의 투자특성 진단이 미약하고 수익자 중심의 공시 역시 부족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사회가 고령화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층이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인 연금(pension)을 근로기간에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점에 기인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자 지난 2005년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이후 시장규모(적립금)는 126조원으로 급성장했고, 최근 5년간 연평균 26.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연금 자산의 운용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인 운용 방식과 이에 따른 저조한 수익성과가 계속되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연구위원은 “원리금보장상품에 평준된 운용 구조로 인해 2% 초반대의 낮은 수익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는 계약형지배구조의 특성과 연금 운용자의 전문성 부족 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의 89%(113조원)가 원리금보장형에 집중돼 있으며, 전체 원리금보장형의 77%가 1년 이하 만기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원리금보장형의 평균 수익률을 살펴보면 확정급여(DB)형의 경우 2014년 2.76%에서 2015년 2.19%로, 확정기여(DC)형의 경우 2.81%에서 2.21%로 지속 하락 중이다.
남 연구위원은 “기금형지배구조의 도입과 함께 연금 선진국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다양한 형태의 디폴트옵션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노후소득보장이라는 퇴직연금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도인출제한과 연금 지급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디폴트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에 대한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운용회사가 가입자의 성향에 맞는 적당한 상품에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금형은 사용자(기업)가 노사 협의과정을 거쳐 퇴직연금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별도의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사용자와 신탁계약에 체결해 퇴직연금제도 전반을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로, 현재 호주나 영국 등 주요 연금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다. 현행 계약형과 달리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퇴직연금 수급권이 한층 강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말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위해 근로자퇴직금여보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주호 한국연금학회장은 “기금형은 자산운용업의 선진화를 도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계약형보다 한층 더 높은 가입자 은퇴설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기금형이 계약형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기금형은 계약형에 비해 추가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감독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연금자산 운용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개원 19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권준상 기자
권준상 기자 kwanjj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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