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13일 금융위원장을 총괄로 하는 구조조정협의체를 발족하고, 부실기업 퇴출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본지가 기업부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직후였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민간 기업이 짊어진 빚은 1918조744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가계부채(1085조2590억원)와 국가부채(1125조2000억원·공기업 포함)를 더할 경우, 나라 전체가 진 빚만 4000조원을 넘는다. 부채 공화국의 실상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급기야 ‘좀비기업’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실기업이 조선·해운·건설·철강·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국가경제를 뒷받침할 기간산업의 붕괴는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협력사와 노동자들이 잇달아 도산하고 산업 생태계에 균열이 생겨, 종국에는 국가 경쟁력을 크게 후퇴시킨다.
때문에 정부가 관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입을 통한 인위적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점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반길 만하다. 정부는 그 신호탄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강제 합병을 통한 해운업의 경쟁력 회복과 함께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대우조선해양 매각 등 조선업 구조조정에 나선 기류다. 해당 기업들과 노조의 반발이 있지만 ‘이대로는 다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정부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걸림돌은 또 있다. <매일경제>가 8일 경영학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들 공감하면서도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쥔 정부와 채권단에 대해서는 깊은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권의 입김 등 외풍에 이해관계가 갈렸던 그간의 전례를 굳이 꺼내들지 않더라도 당국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가 자초한 터라 누구 탓을 하기도 어렵다. 특히 구조조정을 통한 부실기업 정리가 '부실'로 끝날 경우 국가경제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다른 대형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동시에 두 차례에 걸친 면세점 혈전에서 보듯, 기업들이 산업의 근간인 제조를 버리고 손쉽게 돈 벌 곳만 찾아다니는 행태가 반복되는 한 국가경제의 미래는 없다. 나라 전체가 부실로 들끓는 상황에서 황금알은 제조로부터 등을 돌렸다. 또 다시 국민 혈세로 지탱해야 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기성 탐사보도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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