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해명과 거짓
2015-09-15 07:00:00 2015-09-15 12:52:44
보도 직후 현대중공업 홍보 담당 직원이 찾아왔다. 해명은 간결했다. 2차·3차 협력사까지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단가 인하 요구로 고통 받는 협력사들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구매 담당부서가 보내온 한 뭉텅이의 서류는 펼치지도 않은 채 “반박만을 내세우기보다, 우리의 잘못이 없는지 하나하나 따지고 고쳐가는 계기로 삼는 것이 회사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앞서 본지는 9일치 지면을 통해 대기업들이 실적 부진의 고통을 영세 협력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대표적 사례로 현대중공업의 단가 후려치기 실태를 고발했다. 단가 인하 요구율이 일부 품목의 경우 최대 70%를 넘나드는 등 살인적인 데다, 기성비(톤당 작업단가)까지 절반 가까이 깎아 산업재해와 품질저하 등 2차 피해까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홍보 입장에서 보면 눈을 돌리고 싶은 내용이었지만, 현대중공업은 문제점을 고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같은 날 지면에는 효성에 대한 고발기사도 실렸다. 효성이 자사 출신 특약점에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는 내용으로, 전·현직 임직원들이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돼 있음을 내부 제보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효성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거래처에 대한 수주는 개별 특약점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공식 반박했다. 또 “특약점은 당사 제품 뿐 아니라 경쟁사 제품도 같이 취급한다”며 “따라서 특약점의 매출과 수익은 특약점의 영업활동, 능력 등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를 따졌다. 효성중공업PG 변압기 특약점 인증 관련 ‘약정서’를 보면, 제1항에 “을은 갑(효성)이 생산하는 변압기에 대하여 타 업체의 제품을 소개, 홍보 및 판매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2항에서는 “을이 상기조항(1)을 위반 시에는 갑이 을에게 통보만으로 중공업PG 변압기 특약점을 조건 없이 해지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1월 중공업PG 일반변압기영업팀은 자사 임원 출신이 대표로 있는 T모 특약점의 요구사항을 영업팀 전체에게 이메일로 공지해 물의를 빚었다. 고객사인 한화케미칼이 변압기 견적을 본사나 타 특약점에 요청 시 대응을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한화 구매팀, 공장 등에서 견적 요청시 효성 본사에서는 일관되게 ‘특약점 활성화 정책’에 의해 T모를 통해 공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해 달라”는 특약점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T모 특약점에 대한 특혜로, 효성은 그만큼의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여수공장 CA-5다.
 
홍보는 언론과의 창구다. 언론은 국민과의 소통을 잇는 다리다. 때로는 매몰찬 비판이, 때로는 칭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응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반론은 권리다. 다만 거짓이 일상화될 경우 회사 전체의 이미지 추락은 물론, 해당 기업의 그 어떤 말도 신뢰를 잃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등 총수 일가가 조세포탈 및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검찰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효성의 신중함이 아쉽다.
 
김기성 탐사부장 kisung0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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