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0돌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이 예정된 가운데, 남은 관건은 재벌 총수들의 포함 여부다. 정치권의 분위기는 극히 우호적이다. 땅콩 회항 파문으로 한차례 좌절됐던 특사 카드인지라, 청와대의 의지도 강하다.
무엇보다 단임제 체제에서 집권 3년차는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잃는 쇠퇴기를 의미한다. 내수의 장기 침체로 서민경제가 무너진 가운데, 청와대는 재계를 마지막 비빌 언덕으로 보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대신 막힌 돈줄의 혈관을 뚫어 달라 요청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딜’ 내용도 오간다.
문제는 여론이다. ‘경제 살리기’라는 고리타분한 명분으로는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하기 어렵다. 지금껏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하에 재벌 총수들에게 특혜를 베풀었지만, 남은 것은 공허한 말뿐이었다. 이를 근거로 야당과 시민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난의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것이며, 이는 특사가 갖춰야 할 기본 취지인 국민 대통합에도 반한다.
특히 재벌 총수로서는 유례 없이 장기간 수형생활을 통해 가석방 요건을 갖춘 모 그룹 회장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수감 기간 대부분을 병실에서 보내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은 재벌 총수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경우 롯데 사태와 겹쳐지면서 여론은 또 한 번 재벌개혁으로 쏠릴 수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서 재벌과의 접점을 찾으려 했던 박근혜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무엇보다 대선 공약을 또 다시 헌신짝처럼 저버렸다는 지적은 ‘원칙’을 자신의 정치적 생명으로 삼은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근본부터 훼손시킬 수 있다.
때문에 기왕 내정된 특사라면 그 조건을 달았으면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국내 설비투자, MRO 철수, 중소기업 기술 이전, 하청업체 원가 보장, 골목상권 보호, 지역민 고용, 정년 연장 등 우리경제를 기초부터 튼튼하게 할 방안이면 더욱 좋겠다. 경제민주화의 꺼진 불씨를 기업 스스로 되살리는 우회로를 확보할 수도 있다. 이를 해당 기업의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대국민 약속으로 공표하고, 정부는 그 공을 가져가면 된다.
때로는 솔직함이 모든 비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특사도 '기부'가 담보된다면 국민에게 해악이 아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김기성 탐사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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