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변호인' 이렇게 외치다..'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2013-12-02 08:34:33 2013-12-02 08:38:36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노무현 변호사님은 우리와 재판을 시작하고부터는 우리와 한 편이었어요. 거의 공범 수준이 돼가지고 변론을 한 거지요. 우리는 비교적 차분한데 노 변호사님은 '어떻게 그게 말이 됩니까' 이러면서 감정적으로 격앙됐어요. 막 큰소리를 내기도 하고 판사한테 제지를 당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한 번씩 막 열변을 토하다가 자기 감정을 삭이지 못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그래서 가족들 입장에서는 '변호인이 저래서 판사가 때리려고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때리겠다'고 걱정하기도 했어요."
 
위 발언은 1981년 6월 부산에서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연행돼 불법으로 감금 및 고문을 당한뒤 실형을 받은 '부림사건'에 연루된 고호석씨가 당시 변호를 맡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변호인' 포스터 (사진제공=NEW)
 
그리고 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변호인'이 베일을 벗었다. 이 영화는 많이 알려졌듯 '부림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로 방향을 전환한 '34세 노무현'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다.
 
'변호인'은 극중 판사직을 그만두고 세금 전문 변호사로 부산일대에서 승승장구하던 송우석(송강호 분)이 이후 단골 국밥집 아들 박진우(임시완 분)가 불온서적을 읽은 이유로 구치소에 구금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변호인을 자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린다.
 
"데모하는 것들 공부하기 싫은 지랄병 걸려서 저러는 거 아냐.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 한 게 아냐"라고 외치던 속물 변호사가 "국가는 국민입니다"라며 절규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불의를 보고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당당히 '정의'를 꿈꾼 '인간 노무현'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상식과 정의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단순히 가슴만 뜨거운 영화가 아니다. 낡은 건물을 사용한 배경과 당시 유행한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통닭구이'로 알려진 고문 등이 세밀한 고증을 통해 재현됐다.
 
지루하게 여겨질 법한 공판신을 3분여의 롱테이크로 처리해 몰입도를 높이는 기법은 압권이다. 중간중간 블랙코미디를 연상케하는 소소한 유머는 극의 수준을 높인다. 이 영화로 데뷔한 양우석 감독. '과연 입봉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만듬새가 훌륭하다.
 
◇송강호 (사진제공=NEW)
 
배우들의 연기는 더 할 말이 많다.
 
'설국열차'와 '관상'을 통해 18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송강호의 연기는 '변호인'에서 그 빛을 더욱 발한다. 앞선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도 탁월했지만 '변호인'에서의 연기는 역대 최고라고 불릴만 하다.
 
"그분(노 전 대통령)의 치열했던 삶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에 이 작품을 거절했었다"고 말한 이유가 연기를 보면 이해가 된다.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가 어떤건지 왜 송강호가 국내 최고라 불려야하는지 본인 스스로 입증해낸다.
  
사건을 날조하고 주도하는 차동영 경감을 맡은 곽도원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악한 연기로 송강호와 대적한다. 멋진 악역이 멋진 주인공을 만든다고 한다. 곽도원이 아니었다면 송강호가 이토록 돋보일 수 있었을까.
 
차가워진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자 참여했다는 김영애는 순애를 통해 절절한 모성애를 그렸다. 온갖 고문에 이성을 잃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는 임시완의 연기는 놀랍다.
 
불의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죄책감을 드러낸 사회부 기자 역의 이성민, 불의와 타협한 판사 역의 송영창과 검사 역의 조민기까지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김영애-곽도원-이성민-임시완(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NEW)
 
작품이 훌륭함에도 국내 정치사에 굵직한 영향을 끼친 인물을 묘사해서인지 개봉 전부터 잡음이 많다. 혹자는 제작 환경을 일체 무시한채 "송강호 급전이 필요한가"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누구는 포털사이트의 별점을 깎아내리려고도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더럽히는 기분이다.
 
영화는 마치 이런식으로 반칙과 치졸한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국민을 우습게 보는 권력자들에게, 치열하기보다는 그저 자기 앞가림에 급급해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외치는 듯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이는 비단 기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상영시간 127분. 12월 19일 개봉.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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