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속담에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맛난 고기 반찬도 잘 씹어 먹어야 맛을 느낄 수 있듯, 하고 싶은 말은 끙끙 가슴 속에 담아놓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버리는 게 좋다는 뜻이다.
말 못할 고민이나 비밀, 속내는 술술 털어놓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인생선배님들의 충고는, 자타의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언론계 종사자로서는 두손 들고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란 말이 있듯, 살면서 할 말 안 할 말 가려 해야 하는 것이 또한 인생의 지혜다.
혹시나 하고 매번 기대하지만 (무엇을? 핵심적이고 의미있는 문제제기,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정의와 공익을 위한 건설적 토론 등등) 역시나 하는 방향으로 (어디로? 들으면 들을수록 신뢰가 무너지고 의혹이 증폭되는 정치인들의 '막말 잔치', 그리고 분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의 홍수로) 가고 있는 국정감사를 보고 있노라면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란 격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걸 새삼 느낀다.
요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문이며 잡지며 건성으로 훑고 지나치는 지면이 많았는데, 한 시사주간지에서 읽은 글 하나가 진한 감동을 남겨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슬로 라이프'의 저자 쓰지 신이치, 한국과 일본의 두 생태 환경 운동가의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바꾼다`는 제하의 대담 기사로,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밀양송전탑 사태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언급은 지금 지구촌 각지에서 시위나 반대운동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저항의 목소리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밀양송전탑 사태에 대해 황대권씨는 "센 사람들이 폭력·무력을 쓸 수 있는 건 사람들이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걸 남의 문제로 받아들여서다. 그러니 약자들은 억울해도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국민들이 이걸 내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약자들은 반대편에 있는 상대조차 끌어안으려 노력하면서 진실한 몸짓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려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전남)영광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반핵이나 탈핵 같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원전의 안전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안전성을 확보하는 건 보수 건 진보 건, 영광 주민이 건 원전 직원이 건 누구나 원하는 바가 아닌가"라는 논리를 펼쳤다.
쓰지 신이치씨도 "반대운동을 넘어서는 것은 내게도 오랜 과제였다. 뭔가에 분노하고 반대하는 한편에서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 나빠도 나는 나쁘지 않다. 그러니 나는 책임 없다는 식이랄까?"라고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유명한 반(反)원전 이론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방사능이 원전을 추진한 사람들 머리 위에만 떨어지면 좋을텐데…"라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면서 "거기에는 친(親)원전파에 대한 미움과 '거봐, 내 말이 맞았잖아'라는 우쭐함만이 있을 뿐 고통받는 생명에 대한 고뇌는 없다"고 비판했다.
미래와 젊은 세대에 대해 황씨는 "내가 전체와 연결된 존재임을 잊지 말라"며 "내가 왜 태어났을까? 결국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태어난 거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자리를 못 찾고 엉뚱한 데를 헤매다 죽는다. 왜 그럴까. 욕망에 매달려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머리가 발달해 있어 끊임없이 자의식과 욕망을 좇게 돼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몸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라고 충고했다.
쓰지씨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부디 깨끗한 물과 공기, 흙, 그리고 안전한 음식을 주십시오. 그 밖에 사치는 바라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이 같은 최저선을 들여다 보고, 그 길로 내려서는 일"이라는 생태운동가의 시각을 담은 삶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필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읽으며, 대안 없이 공허한 반대와 방관자적인 독선의 말로 벽을 쌓을 게 아니라 '절대 타협하고 포기해서는 안될 근본적인 가치'를 다수의 공감대 위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필자조차도, 말과 글을 생산해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하는 자로서 그간, 말하기는 좋아하되 객관을 빙자한 무관심으로 사회 현안들에 거리 두기를 해왔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책 읽고 사색하기 좋은 이 아름다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불필요한 말은 삼가고 좀더 많이 읽고 생각해 행동에 옮길 것이 있다면 어서 시작해야겠다.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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