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첫날, 다수의 국민들이 팍팍한 살림살이에나마 명절 준비로 분주하거나 끝도 없는 귀향여로에 올라 있었을 그 때, 아니면 모처럼 긴 연휴를 맞아 느긋하게 국민 배우, 국민 가수가 나오는 화면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을 그 때, 다수의 언론매체들은 ‘국민 저항’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靑·野, 추석상에 '국민 저항' 올려놓다>(조선일보 1면), <박 "장외투쟁, 국민 저항 부딪힐 것" / 김 "불통정치, 국민 저항 부딪힐 것">(경향신문 1면), <박대통령-김한길대표, 서로 "국민저항 부딪힐 것">(한겨레신문 1면) 등등….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언론들이 정치인들의 말싸움을 그대로 옮겨 써놓았다.
대개는 평소보다 더 마음이 너그러워지기 마련인 명절에 우리 사회의 리더라는 정치인들은 서로 네 탓을 하며 이렇게 날 선 악담을 늘어놓았다. 읽기에 따라서는 서로 자신들을 위해 저항을 해달라고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한데, 과연 그들에게 `국민 저항`은 무엇이며, `국민`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상대방을 정당하게 인정하며 서로 소통해 최상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한국의 정치인들은 지금, 힘 겨루기에 온 힘을 쏟느라 식물국회 상태를 한달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에 대해 여야는 전혀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취득세율 영구인하, 분양가상한제 탄력 운영 등 부동산시장 관련 법안처리가 이대로 계속 지연된다면,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부동산시장발 `국민 저항`에 여야 모두가 부딪히게 될 분위기다.
세제개편안은 또 어떤가. 최고세율 구간조정, 법인세율 인상안 등 주요 쟁점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세제개편안 확정과 이에 따른 세수확보 밑그림 그리기, 이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까지 갈 길이 먼데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지 의문이다.
무상보육비 지급문제, 통상임금 개편안 등도 이번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지만 여야간 쌍방향 대화의 기미는 안 보이고, 일방향의 프로파간다 구호만 거리에 나부낀다.
지난 연휴에 국민 배우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 '관상'을 인상 깊게 봤다. 두 정치권력이 격돌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식을 잃고 세상을 등진 주인공은, 자신을 찾아온 권력투쟁의 승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파도를 높이 탄 것이고, 우리는 파도의 아래에 있었던 것. 하지만 언젠가 파도가 뒤바뀔 것이네."
너무도 쉽게 '국민'을 대표하려 드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진정한 민심은 못 읽고 '국민 저항' 운운하며 정쟁의 수사법을 남발하는 작금의 정치인들에게 파도에 빗대어 한마디 덧붙인다.
"쉴 새 없이 일렁이는 물결 밑에는 거대한 해류의 흐름이 있다네. 정말 (국민 저항의) 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면 (여야) 어느 쪽이건 큰 시련을 겪을 것이야."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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