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아니, 청소마저도 본인 스타일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가 원 없이 치울 수 있도록 필자는 저만치서 얌전히 책이나 보고 있다가 무거운 쓰레기 정도만 날라다 주었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아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정리를 한 건 바로 옷장이다. 평소 잉여소비를 극히 자제한다고는 하나 내외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지라 간간이 옷가지를 장만해온 데다, 안 입어도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한 멀쩡한 옷도 꽤 되니 이번에 작심하고 정리를 한 모양이다.
'이걸 다 어떡한다? 골목 모퉁이의 헌옷수거함에 다 갖다 넣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는 그 옷들을 크게 둘로 나눠 차곡차곡 갰다. 하나는 '아름다운가게' 기증용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옷장 프로젝트' 기증용이란다. 아름다운가게는 뭔지 알겠는데 열린옷장 프로젝트는 뭐지?
열린옷장 프로젝트는 기증받은 정장을 면접 복장이 마땅치 않은 청년 구직자들에게 최소 비용으로 대여해주는 사회적기업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면접용 치장에 드는 돈이 상당해서 허리가 휘는 취업준비생들이 많다는 기사를 봐온 터라, 기꺼이 이를 위해 주말 오후를 투자한 것이다.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은 사회적기업육성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정의된다.
소외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고, 친환경, 공동체, 기부 등 듣기만 해도 훈훈하고 실천하면 더욱 좋은 활동을 좀더 체계적 기업형태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기업은 무척 매력적인 존재다.
유럽, 미국 등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5만5000여개의 사회적기업이 활동 중인 영국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이미 전체 고용의 5%, GDP의 1%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성장해 있다.
한국에서는 2007년 7월부터 고용노동부가 주관해 시행중이며 앞서 언급된 아름다운가게처럼 재활용품을 수거 판매하거나 장애인을 고용해 의류, 식품 등을 제조하는 업체 등이 그 예다. 정부 인증을 받으면 4대 보험료 지원, 법인세, 소득세 일부 감면, 경영 노무 컨설팅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시작은 했지만, 이제 걸음마 단계라 갈 길이 멀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사회적기업 모태펀드'에 25억원을 출자, 민간투자금까지 합해 총 50억원 이상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자본 조달이 어려운 사회적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가 목적인 펀드인데 예년 성과를 보면 민간 참여가 저조해서 2011년의 1호 펀드 42억원 중에서 민간투자금은 17억원, 2012년 2호 펀드 40억원 중에는 15억원에 그쳤다.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이다 보니, 수익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민간기업에는 그다지 큰 호응이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렇게 모은 자금을 활용하는 실적도 부진하다. 1호 펀드에서는 12억원만 투자가 됐고, 2호 펀드는 투자 실적이 없다. 이 정도면 민간투자자나 혜택을 봐야 할 사회적기업에나 이 기금은 `관심권 밖`인 수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기업이 사회공헌활동(CSR)의 실행 방안으로 연말연시 기부나 단체봉사활동 외에 사회적기업과의 자매결연이나 자사 협력사의 사회적기업 전환 지원 등을 대안으로 찾게 되면서 점차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을 해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근심, 말다툼, 빈 지갑이다. 그 중 빈 지갑이 사람을 가장 해친다."
통계청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한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말 기준으로 세금을 빼고 쓸 수 있는 소득인 '가처분소득'이 고소득층은 연간 7885만1000원, 중소득층이 3168만9000원, 저소득층이 873만7000원인데, 저소득층에 속하는 가구가 412만 가구로 집계됐다.
매월 쓸 수 있는 돈이 법정 최저임금 101만5740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73만원밖에 안 되는 가구가 이렇게 많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논란의 중심에 선 국민행복기금 역시 '빈 지갑' 때문에 심신이 고된 저소득층을 보듬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더 탈무드를 인용하자면, 잡은 물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
정부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육성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마음도 열고, 옷장도 열고, 나라 곳간도 열어야 할 때다. 봄의 기운을 빌려서 좀 더 힘을 내자.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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