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춘삼월이라고는 하나 바람이 여전히 찬 요즘 날씨에도 꼭 들어맞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옛 정부가 국정을 이끌고 있는 요즘 나라 상황에도 꼭 들어맞는다.
51.6%란 득표율을 선물한 국민들은 훈훈한 봄바람 같은 새 정책들을 바라고 있는데 과연 박근혜정부는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최근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국민행복기금` 관련 논의들을 보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국민행복기금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된 공약으로 정부 주도로 18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장기간 빚을 갚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공약의 실현을 놓고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이 제기된다. 하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이다.
첫째,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국민행복기금 조성 소식에 일부 연체자들이 빚을 갚지 않겠다며 버틴다는 소식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빚 제때 갚으면 오히려 손해"고 "빚 제대로 다 갚으면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이미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10월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원금 30%를 깎아주고 상환 기간도 8년으로 늘리는 채무 탕감 방안을 발표했다. 소식이 전해지던 2003년 3분기말 카드사의 연체율은 11.99%로 올랐다가 대책이 발표된 4분기에는 14.06%까지 급등했다. 연체율이 다시 10% 선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착실히 부채상환 중인 다수의 채무자들이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책임감을 뒤로한 채 억울함과 상실감의 터널을 지나 탕감 무임승차 기회를 노리는 불성실 채무자로 변신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1년 이상 연체자가 대상이며 재산이 있으면 탕감대상에서 제외되고, 소득 등을 고려해 최저 30~50%까지, 기초생활수급자는 최대 70%까지 원금을 감면해준다는 정도의 얼개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의 어떤 빚을 어느 선까지 덜어주고 어떻게 갚게 할 것인지 합리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이 빨리 정해지지 않으면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둘째, 재원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관리, 운영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공약을 내걸 때 당초 복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신용회복기금 8700억원과 캠코 자본금 7000억원,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3000억원을 합쳐 1조8700억원을 기초재원으로 10배수의 채권을 발행해 18조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산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캠코의 자본금 7000억원은 이미 확보된 돈이 아니라 캠코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해야 할 돈이다. 캠코의 부채비율은 118%선으로 공공기관 가이드라인 200%선 아래지만 7000억원이란 큰 돈 마련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2008년 9월 출범한 신용회복기금의 8700억원은 은행권이 부실채권정리기금에 출연한 몫의 배당금을 모아 만든 것이니 은행돈인 셈인데 여기에다 가계부채 문제에 책임이 있는 은행이 빠질 수야 있나, 또 국민행복기금에 갹출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이니 은행들로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무엇보다도 1조8700억원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을 채권을 발행해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개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진 빚을 해결하려고 대신 나라가 어마어마한 빚을 내는 양상이라,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부의 역할이 과연 어디까지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는 3월중 국민행복기금 출범을 목표로 함을 밝혔고, 일단 8000억원대의 신용회복기금을 전액 국민행복기금으로 전환해서 시작부터 하고 임기 동안 단계적으로 기금을 늘려가면서 지원대상을 확대할 것이라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도 기사화된 상태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사안이니만큼 신속히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나 신용회복기금을 국민행복기금으로 이름 바꿔 단 것 이상의 성과 개선을 가져올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가 돼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했다. 지금 한국의 '빚 지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국민행복기금을 회생의 봄바람처럼 가슴 설레며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부디 박근혜정부는 이 기금이 표 얻기에 급급해 급조한 공약이 아님을, 정권 초기에 벌였다 흐지부지 되는 용두사미 정책이 아님을 증명해주기 바란다. 아, 우선 그전에 인사청문회, 정부조직법 산 넘어 진짜 박근혜 정부 꾸리기부터.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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