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행정과 교육의 대표 책임자를 뽑는 6·3 지방선거가 정치세력 간의 사생결단이 아닌 지방과 교육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지역 소멸과 대학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대한민국에 절체절명의 해법이 절실하다. 지방 소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무엇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비판적 징후다. 지방 소멸을 단순 통계가 아니라 국가 운영 방식의 모순으로 읽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운 좋은 기적의 나라’에 머물 수 없다. 높은 교육열·수도권 중심의 효율·과거 산업화의 기억만으로 미래를 버틸 수는 없다. 지방과 대학을 살리는 일은 국가사회 구조조정의 예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 비전의 엔진을 수도권 밖에 다시 장착하는 일이다. 지역과 대학이 곧 국가경쟁력의 하부구조임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두 가지가 부럽다. 지방분권과 주민자치가 삶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점과 타국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학들의 존재다. 과거 중국이 꺾일 기세 없이 한참 잘나갔을 때, 세계 제1의 자리를 미국이 빼앗길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제법 있었다. 당시 중국의 국가주석 임기는 10년의 제한 규범에 묶여 있었고, 민간기업 중심의 성장 동력이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중국 일대일로의 거침없는 추진과 비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난공불락의 높은 벽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대학이다. 미국의 지역 주립대 사례를 리서치해 보면, 대학을 단순히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경제·의료·노동시장·공공서비스를 떠받치는 전진 기지로 본다. 지역 하부단위의 대학기관으로 갈수록 대학의 임무와 역할은 더 구체적이다. 고등교육의 접근성, 지역경제, 필수 인력난 해소, 공중보건 인프라에 기여하고 있는 앵커 기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꽃피워 온 모든 철학과 인문학 및 사회과학을 미국 대학으로 대이동하고 전이되는 과정이 되었다. 특히 히틀러 시대 절정에 다다랐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은 학문적·학자적 생존을 위해서 유럽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미국 대학은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세기적 행운을 얻었다. 뿌리 깊은 철학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변동 이론들이 몽땅 미국의 대학에 그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미국의 강점은 일부 명문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각 주에 뿌리내린 주립대·랜드그랜트 대학 체계에 있다. 동시에 연방정부 하나의 힘만이 아니라 주정부·카운티·시타운 단위의 생활 자치와 결합되어 있다. 미국의 지식 생태계는 넓고 질기다.
국가의 미래는 수도 서울의 높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역의 대학이 살아있고, 청년이 머물며, 기업이 사람을 구할 때 비로소 국가는 지속 가능한 비전을 갖는다. 지역 소멸 문제는 한 지역의 인구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빠져나가고 고령화가 누적되는 현상은 지방대학·산업·의료·문화·행정의 기반이 동시에 약해지는 국가적 적신호다.
도널드 혼은 『운 좋은 나라(The Lucky Country)』에서 자원과 운에 기대는 당시 호주라는 국가의 안일함을 비판했는데,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더 이상 수도권 집중과 과거의 교육열이라는 ‘부지런한 운’에 기대는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방과 대학을 국가발전의 신동력으로 삼는 국가 현대화 전략을 본격화할 때다.
6·3 지방선거 유세장과 토론회에서 지방 소멸과 대학 위기 논쟁이 선거 이슈의 한복판을 차지하면 좋겠다. 이제는 지방과 대학 문제는 단순한 복지나 행정 영역 또는 캠퍼스 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비전의 설계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박상철 (사)미국헌법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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