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차철우·유지웅 기자]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한마디로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냉혹했던 여건 속에서 한국 정치는 대통령 파면과 탄핵, 조기 대선 정국 등을 거치며 '격랑의 연속'이었습니다. 실제 지난해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윤석열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고, 두 달 만에 치러진 6·3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나라 밖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유례없는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무역 질서가 흔들렸습니다. 국가 간 경계는 관세 장벽으로 가팔라졌고 지정학적 균열은 북한·중국·러시아 3국 밀착이라는 '신냉전' 그림자를 한층 짙게 드리웠습니다.
정치적 혼란 속 한국 경제는 올해 대내외적으로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직면하면서 시계 제로 상황에 놓였습니다. 사상 초유의 계엄 사태는 내수 심리를 급속히 얼어붙게 만들었고, 연초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관세정책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하지만 6월 출범한 새 정부의 적극적 확장재정 정책으로 경기 회복 불씨를 마련했고, 0%대 저성장에서 탈출하는 반등 발판도 만들었습니다. 다만 여전히 저성장 고착화라는 냉혹한 현실 속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다사다난했던 2025년 정치·경제 분야 10대 뉴스를 짚어봤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①'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소추를 인용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약 4개월 만으로, 정국 혼란의 종착점이었습니다. 헌재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조치가 권력분립 원칙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했고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헌재 선고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했습니다. 이는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이 인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 파면으로, 윤 전 대통령은 임기 개시 이후 2년11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②이재명 대통령 당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6월4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 민생·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뒀습니다. 특히 미래를 위한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과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정책 역량을 쏟아부었습니다. 외교 분야 역시 다자외교 무대에 잇따라 참석하며 외교 정상화도 본궤도에 올려놨습니다. 아울러 용산 대통령실에서 청와대로 집무실을 이전하며 국민과의 소통 강화와 국정 운영의 격조를 높이겠다는 의지도 천명했습니다.
③'정상화 정점' 경주 APEC
이 대통령은 "인수위 없이 시작한 만큼 준비 기간이 촉박하다"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취임한 지 불과 12일 만의 '초고속 외교 데뷔전'이었습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반년 넘게 실종된 정상 외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G7 정상회의 참석을 시작으로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5개월간 5차례 다자외교 무대를 밟았습니다.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며 우리 정부 대북 구상인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전략을 처음 국제사회에 공개했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의장국으로서 '경주 선언' 채택도 끌어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달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는 등 한·중 관계도 정상화하고 있습니다.
④한·미 관세 협상 '극적 타결'
이재명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3500억달러(약 501조원) 대미 투자 패키지 해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과 치열한 실무 협상을 거친 끝에, 한국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도체 관세 역시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할 합의와 비교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 가운데 2000억달러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로 설정하며 안전장치를 뒀고, 나머지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에 투자하는 데도 합의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안보 분야 협상을 통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공식화하는 등 '깜짝 성과'까지 냈습니다
⑤6년 만 트럼프·시진핑 담판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미 빅딜'에 이어 '미·중 휴전'이라는 새 역사를 썼습니다. 지난 10월30일 미국은 대중 관세를 10%포인트 낮추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6년 만에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전쟁 '확전 자제'에 뜻을 모은 것입니다. 이 합의는 경색된 미·중 관계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의 후속으로 지난달 1시간가량 통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4월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중국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를 1년 6개월 동안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0월 경주 회담 이후 형성된 화해 무드를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⑥톈안먼에 선 북·중·러 정상
북·중·러 정상은 지난 9월3일 중국의 전승절(항일 전쟁과 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열병식)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톈안먼 망루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왼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른편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각각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북·중·러 정상의 밀착은 미국과 서방의 압박에 맞선 '반서방 연대'와 '신냉전 체제'를 과시한 장면으로도 해석됩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참석한 대규모 다자외교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김 위원장이 열병식 참석을 통해 '몸값'을 높였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북·미 간 담판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핵보유국인 중·러를 뒷배로 두고 협상력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⑦'여자 아베' 다카이치 취임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지난 10월21일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은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자민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잃은 뒤 일본유신회와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며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 내각은 취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적극 외교와 적극 재정 기조 등이 높은 지지율의 배경으로 분석됩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내에서도 극우성향 인사로 분류됩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 과거사 문제에서 우익 성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하는 등 우익 성향의 행보가 한·일 관계의 주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⑧글로벌 시장 '에브리싱 랠리'
올해 글로벌 금융·증권시장은 위험 자산과 안전자산 등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위험자산인 주식과 가상자산을 비롯해 안전자산인 금과 은 등이 동시에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이른바 '모든 자산 랠리'가 펼쳐진 것입니다. 이는 금리 인하 기조와 유럽의 재정 확대, 미국의 양적 긴축 종료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포화 장세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에브리싱 랠리는 5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각국 정부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례 없는 돈 풀기에 나서자, 시장에 쏟아진 유동성이 주식·금·원유 등 대부분의 자산 가격을 밀어 올린 바 있습니다. 한국 역시 지난 10월27일 코스피 지수가 '꿈의 고지'로 여겨졌던 4000선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습니다. 이재명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금융시장 체질 개선'을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한 가운데, 부동산 시장으로 쏠린 시중 자금을 증시로 유입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붐업' 정책을 펼친 결과입니다.
⑨AI 패권 경쟁 '일촉즉발'
올해 인류는 AI 일상화 시대에 들어서며 연초 중국발 '딥시크(DeepSeek)' 쇼크와 함께 글로벌 AI 패권 경쟁을 마주했습니다. 지난 1월 말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전 세계 기술계를 경악시켰고, 서방 언론은 일제히 그 기술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기술 봉쇄가 오히려 중국의 독자적 알고리즘 혁신을 가속화했다는 평도 낳았습니다. 생성형 AI는 물론, 오픈AI도 다양한 경쟁사들이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고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엔디비아의 독점 체제를 깨려는 움직임이 치열해졌습니다. AI 산업은 올해 한국 경제에서도 핵심축으로 부상했습니다. 정부는 AI 정책 컨트롤타워를 강화했고, 재계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을 가속화했습니다. 국내외 산업 리더들의 이른바 '깐부 회동'은 AI 시대 한국의 전략적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⑩경제 마중물 '소비쿠폰'
이재명정부는 출범 후 경제정책 기조를 확장 재정으로 급선회하며 민생·경제 살리기에 올인했습니다. 두 차례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그 중 약 12조원의 예산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투입됐습니다.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지급된 소비쿠폰은 1차 지급 시엔 전 국민 1인당 15만원(기본금 기준)이, 9월 2차 지급 시엔 10만원이 각각 지원됐습니다. 소비쿠폰은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를 녹였고 강력한 내수 진작책에 힘입어 민간소비는 2분기 0.5% 3분기 1.3%로 회복세를 나타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비쿠폰과 같은 단기 소비 진작책은 일회성 혜택에 머무르며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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