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마저 물먹이는 강대국 정치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중국의 대만 문제 중요성 이해한다"는 트럼프
2025-11-28 06:00:00 2025-11-28 06: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28개항 종전안'을 내놨다.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등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 대부분을 내주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포기하며, 병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60만명으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였다. 당연히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침략자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 '항복 문서'라며 극력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주택가에서 지난 6월7일 러시아 미사일의 공격으로 화재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미국·우크라이나 협상단은 트럼프의 종전안에서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대한 사면, 러시아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투자해 미국이 이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부분 등을 수정한 타협안을 만들었다. 핵심 사안인 영토 문제와 나토 가입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도록 비워놨다. 
 
그 직후 러시아는 미국이 아직 이 타협안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비토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알래스카에서 트럼프를 만나 요구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당시 알래스카에서 푸틴은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양보하고 나토 가입도 포기하고 러시아어·러시아정교회의 권리를 보장하면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푸틴의 요구가 '트럼프 종전안'의 실체였던 것이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는 가냘프기 이를 데 없고, 세계 1, 2위 군사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흥정이 전체 판을 좌우한다. 
 
국제정치를 강대국들이 좌우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트럼프 시대는 그 이전 '탈냉전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미주 대륙과 이를 둘러싼 태평양과 대서양을, 중국은 동아시아를, 유럽연합은 서유럽을,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세력권으로 분할하는, 19세기식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정치 조짐이 나타난다. 러·우 전쟁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끝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 방중 계획 밝힌 트럼프, 다카이치에게는 "중국 자극 말라"
 
비슷한 모습이 아시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면서 "미국은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했다. 시진핑이 "(중국으로의) 대만 복귀는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말한 것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중국과 일본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반면 트럼프는 다카이치에게는 대만의 주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불과 한 달 전 다카이치에게 "우리는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고 했던 트럼프였다.
 
대만 문제는 마오쩌둥 이래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으로 간주해온 사안이다. 대만이 독립 추진을 가시화고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거나, 대만이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중국은 무력 침공도 불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만 뜨뜻미지근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알게 될 것"이라고 피해 가거나, "관세를 200% 부과할 것"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할 뿐이다. "시진핑이 내 임기에는 대만 침공 안 한다고 했다"고 하는가 하면, 대만 방어 의지를 묻는 질문에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9천5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미국의 방어 지원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일본에서는 오랜 동맹인 자국에 트럼프가 분명한 지지를 나타내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정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크다"고 우려했다. 반면 중국은 득의만면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 중국 내 전문가들과 관영매체가 "도쿄의 행동 공간이 제약됐다"며 일본을 외교적으로 고립된 당사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시 주석은 내게 (내년) 4월 베이징 방문을 초청했으며, 난 이를 수락했다"면서 "그 이후 시 주석이 내년 안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나의 손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큰 그림(big picture)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여기에 스콧 베선트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와 시진핑이 "상호 방문을 포함해 총 네 차례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 첨단 GPU H200 대중 수출도 검토…"트럼프가 시진핑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처음으로 만나 '관세전쟁'을 휴전한 데 이어 본격 '해빙 무드'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라이벌일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며 "그러나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느냐면 그렇다.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대중 수출을 묶어놨던 첨단 반도체 수출도 허용할 기세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H200'의 중국 수출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H200은 최신 '블랙웰' 기반 제품보다는 못하지만, 현재 수출이 승인된 저사양 칩 'H20'과 견주면 두 배가량의 성능을 보인다. 중국은 H20만으로 챗GPT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자체 인공지능(AI) '딥시크'를 만들어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엔비디아 칩의 대중 수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책상 위에 놓인 사안"이라며 "추진 여부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시진핑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까지 '미·중 신냉전'을 운운한 시각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대서양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이 영국이라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그런 일본도, 세계 국내총생산(GDP) 4위인 일본도 G2 강대국 정치에 물을 먹고 있는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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