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내년 하반기 중 검찰청 폐지가 확정되면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아온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기로에 놓였습니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불분명해지면서 특사경 지휘 체계도 개편할 수밖에 없는데요. 금감원은 이 틈을 타 민생금융범죄 특사경 신설 등 수사 권한 확대를 도모하고 있지만, 수사권 남용과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특사경 지휘권 향방 묘연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민생 침해 금융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특사경에 대한 설치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입니다. 금융당국은 새 정부 기조에 따라 보이스피싱, 불법사금융, 보험사기 등 서민을 표적으로 하는 민생금융범죄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해왔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민생금융범죄 대응 기능을 이번 조직개편 때 대폭 강화하려 한다"며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관련 특사경을 신설해 대대적으로 조사·수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 원장은 "형사소송법에는 금감원 특사경의 인지수사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전혀 없는데 금융위 감독 규정으로 임의적으로 인지수사를 제한했다"며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이 없다는 것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사경은 전문 분야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행정기관 공무원, 민간인 등에 제한된 범위의 수사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현재는 금융당국에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관련 특사경만 허용돼 있습니다. 통신 사실 조회, 압수수색, 출국금지 등의 강제 수사권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서만 수사할 수 있습니다.
민생금융범죄 특사경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특사경처럼 사법경찰법을 개정해 관련 근거 조항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법경찰법 제6조 직무 범위와 수사 관할 조항에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대부업법, 전기통신금융사기방지법 등을 넣고, 특사경 직원에 대한 자격 요건도 명시해야 합니다.
법령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사법경찰법 관할 부처인 법무부, 상위 부처인 금융위와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금융위는 그간 민간인 신분인 금감원에 인지수사권과 강제조사권을 부여하기 어렵다며 반대해왔습니다. 강제조사권의 경우 민간인에게 국민의 신체를 구속할 권한을 주는 것이 행정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금감원 특사경 강화에 대해 "(인지수사권 등이) 공권력이기 때문에 남용되거나 오용되면 굉장히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또 국가 법체계와 관련해서 검찰, 법무부 등과 역할 분담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 특사경 권한 강화는 검찰청 폐지 논의와 떼놓고 볼 수 없습니다. 검찰청이 폐지되면 공소청 또는 중수청이 수사지휘권을 맡게 될 가능성도 있으나 어느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사법경찰을 지휘할지 아직까지 불투명합니다.
지휘 체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특사경 권한 확대를 추진할 경우 금융당국의 권한 집중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금융사의 영업·검사·제재 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위나 금감원이 수사권까지 확대한다면 행정권 남용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의 사법경찰권 오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상위 부처인 금융위에 심의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다만 행정기관이 수사기관화된다는 우려가 따라붙을 수 있어 금융위 내부 위원회 형태로 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금융위·금감원이 설치한 내부 위원회 형태로는 금융당국 내부 통제장치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인지수사권 확보 등 금감원 특사경의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행정기관 수사기관화 우려
현재 금감원 특사경은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통보하거나 금융위 증선위원장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사건 또는 직접 인지한 사건에 대해 검사의 지휘를 받아서만 수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검찰 폐지 이후에도 행정기관(금융위)이 특사경의 수사 개시를 의결하는 구조가 유지될 경우 행정권력의 과도한 개입, 강압수사 논란, 금감원의 독립성 저해 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금융위 역시 정책 집행·감독 권한을 동시에 보유한 행정기관으로, 금융회사 제재·인가 권한을 포함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기관이 특사경 수사 개시권까지 실질적으로 쥐게 되면, 금융사·시장 참여자와의 이해 충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여당에서는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의 인지수사권이 금융위원회 감독규정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금감원 권한 확보를 위해 필요한 입법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입니다. 김건희 관련 의혹으로 특검 대상인 삼부토건·웰바이오텍 사건 등 중대범죄 수사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했다는 판단으로 명분이 선 상황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검찰 폐지 후 금융범죄 공백을 막기 위해 금감원 특사경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야 공감대가 있다"며 "행정기관에 수사권을 직접 부여하는 방안보다는 신설하는 중대범죄수사청과 협력하는 형태로 특사경 권한을 확대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금융위·금감원으로부터 독립된 외부 전문가 기구가 특사경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를 비롯해 최근 민생 침해 범죄에 대한 단속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수사권 오남용 등의 부작용은 차단해야 하겠지만, 전문 분야 범죄 수사 체계를 정비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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