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차세대 기술인 반도체 유리기판이 부상하면서 국내 부품사들이 속도전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며 기술 경쟁에도 속도가 붙는 모습입니다. 장기적으로 부품사들로서도 잠재력 높은 시장인 만큼 선제적인 시장 공략을 위해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는 양상입니다.
SKC의 자회사 앱솔릭스의 유리기판. (사진=SKC)
최근 SKC가 내년도 유리기판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속도전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SKC는 지난 5일 3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5060억원, 영업손실 528억원, 순손실 99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다만 반도체 소재 사업 매출은 645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반등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SKC는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 유리기판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SKC는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첫 양산 샘플을 제작했으며, 현재 고객사 인증 절차를 밟는 중입니다. 시제품 검증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상업화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쟁사들도 양산 체계를 갖추기 위해 열을 올리는 양상입니다. 삼성전기는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스미토모화학그룹과 ‘글라스 코어 제조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 검토’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유리기판 양산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유리기판의 한 종류인 ‘글라스 코어’ 제작을 공동 추진하는 것으로,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미래 기판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소재”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 평가되는 LG이노텍도 양산 준비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LG이노텍은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구미 공장에 유리기판 제조 설비를 구축하고 시제품을 개발 중입니다. 완성도 높은 시제품 확보 이후 본격적인 생산라인 구축에 들어갈 것으로 분석됩니다.
SKC의 유리기판. (사진=SKC)
국내 주요 부품사들이 경쟁적으로 유리기판 개발에 나서는 것은, AI 반도체 경쟁이 칩 설계를 넘어 기판 영역으로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과제로 떠오르면서, 기존 기판은 연산량 증가와 발열이라는 한계에 직면한 실정입니다. 제품 휨 현상이 적고 열팽창률이 낮은 기판이 필요해진 가운데, 유리기판이 대안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AI 상승세가 이어지는 동안 유리기판 시장도 확대될 것이란 견해도 나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TBRC에 따르면, 세계 유리기판 시장은 지난해 79억달러(약 11조40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29년 108억5000만달러(약 15조7000억원)까지 연간 6.6%꼴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선도 국내 부품업계로 쏠리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브로드컴이나 AMD가 국내 부품사 유리기판 도입을 검토한다는 등 구체적인 기업명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국내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가에서 특정 기업이 언급되면서 유리기판 양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고객사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지만, 미 빅테크 기업을 주로 상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상업화까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재섭 나노종합기술원 실장은 “장비가 아직 정확하게 표준화가 안 돼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라며 “기술적 트렌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시장 수요를 더 지켜보면서 분석하고, 지켜보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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