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하루 만에 양국이 '반도체 관세'와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두고 상반된 견해를 내놓으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합의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만큼, 최종 서명까지 진통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연 200억달러(약 29조원)' 한도로 설정된 대미 현금 투자액을 두고서도 외환시장 충격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러트닉 "반도체 관세 제외"…농산물 개방 논란도 재점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합의로 한국산 제품에 적용될 관세율을 소개하며 "반도체 관세는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명시했습니다. 향후 한국과 재협상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정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주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관세를 적용받기로 합의했다"며 "관련 문서는 마무리 검토 중"이라고 재차 설명했지만, 곧 발표될 반도체 관세에서 안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은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라고도 했습니다. 협상 성과를 부각하기 위한 과장된 표현일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농산물 수입 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미 농축산물 시장이 99.7% 개방돼 있고, 나머지 0.3%에 대한 추가 개방은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한·미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쌀·소고기 등 농업 분야에서 추가 개방은 철저히 방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한·미 양해각서(MOU)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반도체 관세 관련 내용이 명문화되지 않을 수도 있고, 미국이 농산물과 관련해 추가 요구를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협상이 다시 교착 국면으로 접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공업지대)와 '팜 벨트'(농업지대)입니다. 팜 벨트 유권자들의 요구는 '자국 농산물의 수출 시장 확대'로 명확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한국시간)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국 측으로부터 대두를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을 즉시 구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한·미 양국이 7월 원칙적인 수준에서 합의했을 당시에도 미국 측은 한국이 '농산물'을 포함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농산물이 반복적으로 언급됐다는 점이 우리로서는 부담입니다.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운용수익'으로 조달?…'간접 긴축' 불가피
정부는 통화스와프 없이 '연 최대 200억달러'를 조달하는 과제를 안았습니다. 김용범 실장은 "보유 외환 자산의 운용수익으로 대부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외화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상당해, 그 수익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이 아니고, 충격이 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매년 30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가는데 외환시장과 산업 전반에 충격이 없을 수 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지 않더라도,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을 재투자 대신 대미 투자 재원으로 돌리면 그만큼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요인은 줄어듭니다. 외환보유액 운용 여력이 줄어들고, 외환시장에는 간접적인 긴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미국과 합의한 '연 200억달러'는 우리 측이 제시한 최대치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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