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서울 송파구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성훈(가명)씨는 근로기준법 개정 소식을 듣고 잠시 웃었습니다. 김씨는 "주휴수당이랑 4대 보험이 적용된다면 좋죠. 그동안 이런 건 꿈도 못 꿨으니까요." 그러다 곧 표정이 굳었는데요. 김씨는 "그런데 사장님이 인건비 부담되신다고 시간을 줄이면, 결국 월급은 그대로거나 줄 수도 있잖아요."
정부가 5인 미만 사업장과 주 15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라는 점에서 환영한 반면 편의점과 외식업계 자영업자, 그리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현실적인 생존 위기와 현장 혼란 우려를 동시에 내놓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작용 최소화와 지원책 병행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주 52시간제, 해고 제한, 연장·휴일·야간근로 가산수당, 연차유급휴가 적용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주 15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 4대 보험, 퇴직금 지급 의무도 없었죠.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이 규정을 적용한다는 계획입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권리 보장 원하지만 현실 불안 여전"
강남구 카페에서 일하는 김태현(가명)씨는 하루 4시간40분씩 주 3일, 14시간 근무합니다. 그는 "15시간만 넘어가면 주휴수당이 나온다는데 너무 좋다"면서도 "그걸 안 주려고 시간을 줄일까 봐 오히려 겁난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박은영(가명)씨도 "주휴수당과 4대 보험 적용은 당연하지만,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으로 일자리 불안이 심해질까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배달대행 기사 이모(가명)씨는 "보험과 휴가가 보장되면 좋겠지만, 코로나 이후 배달 수요 감소로 고용 불안이 커졌다"며 "정책이 내 고용 안정에 어떻게 작용할지 불투명하다"고 걱정했습니다.
편의점·외식업계 "인건비 부담 가중, 영업 위축 우려"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한 편의점과 외식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큰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4월 기준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154만명으로 2020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편의점, 카페, 배달대행, 패스트푸드 등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에 집중돼 있죠.
서울 송파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가명)씨는 "심야 근무 인력을 가족이 대신하며 버텼지만, 인건비가 더 오르면 야간 영업을 포기하는 곳이 늘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카드 수수료 부담까지 겹쳐서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치킨집 내부. (사진=이지유 기자)
치킨집 사장 이모(가명)씨는 "배달 매출 감소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주휴수당·4대 보험 부담까지 더해지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고, 이는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는데요.
정부의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방안은 노동자의 권리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현장에서는 양측 입장 차이가 뚜렷해 갈등과 긴장도 커지고 있습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법 적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면 경영난이 심화되고, 일부 점포는 폐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신생 점포나 자본력이 약한 소규모 업주들은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반면 노동자들은 "권리 보장이 우선"이라며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안전망과 보장을 원하죠. 하지만 일부 알바생은 "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업주들의 인력 감축이나 고용 축소로 인해 실질적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전문가 "부작용 최소화하는 지원책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 개정의 취지에 공감하며, 노동시간 쪼개기 등 회피성 고용 관행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도 정비를 통한 고용 질서 확립의 방향으로 평가합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은 단시간 노동자와 영세 사업장 종사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4대 보험, 퇴직금 등이 적용되지 않았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근무 시간을 의도적으로 쪼개는 방식도 있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더 이상 이런 식의 고용 회피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최소 노동시간 보장 제도를 통해 단시간 노동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춰 최소한의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변화"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법 시행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인건비 상승 부담을 줄이려는 사업주들이 인력 감축, 근무 시간 축소, 계약 갱신 거부 등의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이 줄어드는 가운데, 일부 사업장은 과거처럼 쪼개기 근무나 근무 시간 축소 같은 방법으로 부담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며 "근로기준법 강화가 필요하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사업주의 생존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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