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들이 바위 위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친구가 있습니다. 회색 몸에 검은 점이 흩뿌려진 점박이물범(Spotted seal, Phoca largha)입니다. 이들은 겨울철 중국 랴오둥만(遼東?)의 해빙 위에서 새끼를 낳고, 해빙이 녹기 시작하는 3월이면 먹이가 풍부한 남쪽으로 이동해 백령도에 도착합니다. 2024년에는 283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이 섬을 찾았습니다. 넘실대는 물결 위로 머리를 쏙 내밀거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안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며 한가로이 쉬는 이들의 모습은 한반도에서는 백령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에요.
점박이물범은 1940년대에는 랴오둥만 일대에 약 8000마리 이상 서식했지만, 1950년대 이후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어 1990년대 초에는 1000마리 남짓만 남았습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중국 정부의 보호 조치로 약 2000마리까지 회복되었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해빙이 얼지 않고, 일부 지역에서는 갯벌 매립과 해안 개발로 이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점박이물범을 지키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져왔습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의 박정운 단장은 20여년간 물범의 주요 휴식지를 오가며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왔고, 물범이 안심하고 쉴 수 있도록 인공 쉼터를 조성하며 보호 활동을 이끌어왔습니다. 그 노력은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점사모)’과 ‘점박이물범 가디언즈’ 같은 시민 보전 활동으로 확장되어, 백령도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물범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 보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긴 시간에 걸친 보호 활동이 물범들에게도 신뢰로 남은 까닭일까요? 박정운 단장에 따르면, 요즘 물범들은 예전보다 사람을 덜 경계하고, 때로는 배 주변을 맴돌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고 해요. 인간의 폭력 때문에 영영 멀어질 뻔했지만, 사랑과 존중으로 다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는 반갑고 기쁜 소식입니다.
하루는 백령도 동쪽 하늬해변에서 간조 때의 '물범바위'를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물범들이 자주 찾아와 쉬는 아지트 같은 곳이라 붙여진 물범바위에 점박이물범들이 나란히 누워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바짝 붙어 누운 채 옆에 있는 친구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엎드린 채 태평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마냥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은 바위 위에도 나름의 질서와 경쟁이 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는 우두머리의 몫이고, 물이 차오르면 서열이 낮은 순서대로 바다로 들어갑니다. 좁은 바위에는 모두가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 물범들은 바위 주변을 맴돌거나 머리만 수면 위에 내놓고 근처를 부유합니다. 와중에 물이 차오를 때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바위에 머물기 위해 서로 몸을 밀착시키는 모습은 우습고도 귀여웠습니다. 서로에 대해 다정한 이런 점박이물범의 백령도 일상이 앞으로도 이 섬의 당연한 일상이기를 바라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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