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스마트폰 배터리, 하루 종일 써도 넉넉
포항공대·카이스트, '이온 고속도로' 만들어
2025-08-08 09:28:09 2025-08-08 14:27:18
전통적인 바인더와 ISP 바인더를 기반으로 한 음극의 구조도 및 음극의 광학 일러스트레이션. (사진=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기술혁신으로 한 번 충전에 전기차로 부산까지 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동연구팀이 배터리의 심장이라 불리는 전극 구조를 혁신할 신소재를 개발했습니다. 기존보다 배터리 용량은 약 1.5배, 안정성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에너지 저널 <에너지와 환경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7일 자에 발표했습니다. 
 
"배터리를 다시 붙들다"…접착제 역할 넘은 'ISP 바인더'
 
기존의 배터리 성능 향상 방식은 대부분 더 많은 에너지를 담기 위해 전극을 두껍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두꺼운 전극은 구조가 불안정하고 리튬이온 이동이 느려져 결국 효율은 떨어졌습니다. 박수진 POSTECH 화학과 교수팀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바인더(binder)'에 주목했습니다. 전극 내 소재들을 붙잡아두는 일종의 접착제인 바인더를 근본부터 새로 설계한 것입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이온 소프트 폴리머(ionic soft polymer, ISP)는 단순한 접착제를 넘어 리튬이온의 이동을 촉진하는 '이온 고속도로'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ISP 분자 내에는 전하를 띤 사슬 구조가 규칙적으로 정렬돼 있어 그 사이로 리튬이온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온 클러스터' 통로가 형성됩니다. 이는 기존의 바인더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무겁고 느린 배터리"의 한계 돌파
 
고용량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선 전극 안에 더 많은 활성물질을 채워야 하지만, 이 경우 두께가 두꺼워져 이온이 안쪽까지 도달하기 어려워집니다. 기존 기술은 두꺼운 전극을 만들면 충·방전 속도가 느려지고 수명이 짧아지는 '성능 딜레마'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ISP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유연한 고무 같은 성질로 반복적인 충·방전 과정에서 생기는 팽창과 수축을 흡수하고, 내부에 금이 가도 스스로 복구하는 자가치유(self-healing) 기능을 갖췄습니다. 여기에 금속이 전극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는 현상이나 불필요한 화학반응도 억제해 배터리 폭발 등의 안전 문제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 제품 수준"…상용화 눈앞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연구가 실험실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험에 사용된 배터리는 실제 포장재까지 포함한 파우치형 제품입니다. 이 배터리는 무게당 381.1Wh, 부피당 1067.5Wh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상용 제품 평균치(250Wh/㎏, 650Wh/L)보다 각각 1.5배, 1.6배 높은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스마트폰은 하루 종일 사용해도 잔량이 남고, 전기차는 장거리 주행도 거뜬합니다. 박수진 교수는 "이 기술은 고체전지와 리튬금속전지 같은 차세대 이차전지로의 확장 가능성도 높아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분자 사슬 속 정밀 설계…'화학의 힘'이 만들다
 
연구의 핵심은 바인더 사슬 구조의 정밀 조절입니다. 연구팀은 리튬-3-설포프로필 메타크릴레이트(LSP)와 도파민 유도체(DOPA)를 다양한 비율로 중합해 다섯 종류의 ISP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중 폴리가 이온전도성과 기계적 안정성의 균형을 가장 잘 갖춘 최적의 조합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바인더가 NCM811(니켈 80%) 계열의 고용량 양극재를 균일하게 감싸도록 해 금속 이온의 용출을 막고 표면 반응을 억제했습니다. 이는 기존 바인더(PVDF)가 단순한 반데르발스 결합에 의존해 구조를 쉽게 잃는 것과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핵심재'로 전환된 바인더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며 전기차, ESS, 휴대기기 등 모든 전자기기의 에너지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더 작고 가볍고 오래가는 배터리 기술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지만 단순히 에너지 밀도만 높인 배터리는 구조가 불안정하고 수명이 짧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물리적 구조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전기화학적 안정성과 이온전도성까지 획기적으로 개선한 드문 사례입니다. 특히 상온·상압의 조건에서 공정이 가능하고, 상용 장비를 활용해 제작할 수 있어 산업 현장으로의 전환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그동안 배터리 연구에서 바인더는 '보조적 요소'로 여겨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POSTECH-KAIST의 연구는 보조재가 아니라 핵심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ISP 바인더가 국내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배터리 접착제'의 강력한 변화가 기대를 모읍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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