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한국이 15%의 관세를 약속받는 조건으로 미국에 3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가운데 20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 펀드는 2차전지, 반도체 등 분야에서 조성될 전망입니다. 업계에서는 재원 조달 방안 등 구체적 로드맵을 보고 판단한다면서도 이미 활발한 대미 투자를 벌여온 상황에서 추가 투자 여력이 있을지 조심스러운 입장도 읽힙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주 생산공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관세 협상 관련 브리핑에서 “2차전지 등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 펀드도 2000억달러 조성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2000억달러 조달 방식과 관련해 김 정책실장은 “비중으로 보면 보증이 제일 많은 금액을 차지할 것”이라며 “직접 투자는 비율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매우 낮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00억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이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에 실시하는 보증 한도로 채워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는 추가 투자 여력에 대해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 투자해 현지 공장을 운영하거나 건설 중인 상황에서,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으로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추가 투자금을 조성할 여력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펀드의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단독으로는 펀딩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업계의 고민을 키우고 있습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금성으로 투자를 할지, 아니면 기업이 미국에 직접 투자를 하는 형태인지 투자 방식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에 투자는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실제 한국은 이미 미국의 최대 투자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기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가 총 215억달러(약 28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한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 당시 추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배터리 관련 법안 때문입니다. 2022년 발효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전기차 배터리 부품의 60%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된 차량만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결국 IRA가 중국산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촉진을 불러왔습니다. 지난해 5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43억달러(약 5조7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미국 조지아주에 설립했고, SK온과 삼성SDI도 올해 초 북미 공장 설비투자에 돌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2000억달러 투자 펀드의 구체적 로드맵을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상당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한 상황에서 추가 투자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SNS로만 발표해서 투자 펀드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있다”며 “향후 추가 투자 요인과 정부 지원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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