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더 빨라진 발걸음, 사라진 광장의 삶
MIT 등 공동연구팀, 30년 사이 보행자 행동 패턴에 중요한 변화
2025-07-28 10:51:07 2025-07-28 14:05:46
30년 사이에 보행자들의 행동 패턴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사진=임삼진 객원기자)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도시 생활은 흔히 '분주하고 빠른 것'으로 묘사됩니다. 최근 연구는 이것이 맞는 말임을 보여줍니다. 
 
MIT와 예일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홍콩대학교 등 공동연구팀이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미국 동북부 3개 도시 4개 공공 공간의 보행자 영상을 분석한 결과, 30년 동안 보행자의 행동 패턴에 발생한 중요한 변화를 밝혀냈습니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보행 속도는 15% 증가하고, 같은 기간 공공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의 수는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이 추세는 도시 거리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이 아닌 이동의 통로로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힙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인공지능을 통한 도시 공간의 사회적 삶 탐구(Exploring the social life of urban spaces through AI)'라는 제목으로 지난 7월 24일 게재되었습니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MIT 카를로 라티(Carlo Ratti) 교수는 "지난 40년간 뭔가 변했다. 우리가 걷는 속도,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방식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공공 공간이 다소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더 많은 통로로 작용하고 만남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 영상과 AI 비교 분석으로 변화를 확인
 
연구진은 저명한 도시계획가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yte)가 지난 1978~1980년에 촬영한 영상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2010년 동일 장소에서 동일 시간대에 촬영한 영상을 비교했습니다. 공공 공간 프로젝트가 보관 중이던 원본 영상은 해밀턴과 그의 학생들이 디지털화한 것입니다. 
 
과거 화이트는 보스턴의 다운타운 크로싱 지역,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계단(유명한 모임 장소이자 사람 관찰 명소), 필라델피아의 체스넛 스트리트 등 세 도시, 네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컴퓨터 비전 기반 AI 모델을 활용해 영상 속 사람들의 움직임을 정량화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혼자 걷는 사람의 비율은 1980년 67%에서 2010년 68%로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장소에 접근한 사람들의 5.5%가 그룹과 합류했지만, 2010년에는 2%로 줄었습니다. 
 
그룹 간 만남의 빈도는 감소해 공공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이 줄어들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변화는 도시 주민들이 거리를 사회적 공간이 아닌 통행로로 사용한다는 것을 시사하며, 공공 공간이 사회적 참여를 촉진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카를로 라티 교수는 이런 현상을 "오늘날 공공 공간에는 더 거래적인 성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합니다. 
 
'스마트폰'과 '스타벅스', 광장의 삶을 대체
 
도시의 공공 공간은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연결을 형성하는 장소로 기능해 왔고,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연구진은 오늘날의 보행 행태가 스마트폰의 사용, 그리고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숍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윌리엄 화이트의 영상 자료를 보면, 공공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더 많이 바라보고 있었다"고 라티는 설명합니다. "그곳은 대화를 시작하거나 친구를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때는 온라인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행동은 먼저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고 공공 공간에서 만나기로 하는 것에 더 의존하고 있다." 
 
또한 공공 공간에서의 집단 행동이 감소한 또 다른 이유로는 실내 공간의 매력을 꼽습니다. 논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인도에서 머무는 대신, 사람들은 에어컨이 있는 더 편안한 사적 공간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옮겼을 수 있다. 공공 공간을 계속 개선할수록, 우리 도시를 모임에 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공공 공간은 단지 걷는 길이 아닙니다. 예일대 환경학부의 아리아나 살라자르-미란다 교수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공공 공간은 시민 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며, 오늘날 디지털 공간의 분극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공 공간을 계속 개선할수록, 우리 도시를 모임에 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미국 대도시들 연구에 머물지 않고, 유럽 전역 40개 광장에서의 보행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사회적 삶, 되살릴 수 있을까"
 
도시는 단지 이동의 공간이 아니라 만남의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그 무대 위에 더 이상 배우가 남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디지털이 관계의 중심이 된 시대, 공공 공간은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할까요? 스마트폰과 커피숍 너머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만나는 것이 삶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할 시점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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