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기금평가)②천차만별 기금을 '동일 잣대'로…평가 실효성 '의문'
기금 목적·규모 무시한 획일적 평가
지적 반복돼도 개선 안돼…형식적 평가만 지속
평가단 구성 '불투명'…선정기준·전문가풀 비공개
"현행 평가체계 근본적 개편 필요"
2025-07-25 14:16:49 2025-07-25 16:56:26
 
[뉴스토마토 오승주·이지우·김지평 기자]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기금운용평가가 실효성 있는 진단과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기금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면서 정작 결과는 기금 개편이나 존치 여부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전문가들은 평가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평가 방식의 다변화와 투명성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제82조에 따라 매년 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성과, 자산운용 체계, 정책 적정성 등을 점검하는 기금운용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금별로 3년 주기로 진행되는 기금존치평가에서는 기금의 설치 목적과 재원 구조 등을 분석해 존폐 여부를 판단합니다. 
 
문제는 평가 기준이 기금별 법적 목적이나 업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기금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면서 개별 기금의 설립 취지와 구조적 특성이 평가에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현선 명지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법률에 명시된 기금의 목적에 따라 평가 지표도 달라야 한다"며 "성격이 전혀 다른 기금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과 같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기금 규모의 차이로 인한 한계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자산 규모가 약 1000억원인 중소벤처기업창업 및 진흥기금과 약 10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기금이 동일한 틀 안에서 평가받고 있는데요. 규모에 따라 구분해 평가한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유사한 지표가 적용되면서 평가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사회적 영향력이나 국민 체감도가 현격히 다른 기금에 동일한 평가 체계를 적용해 결과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 교수는 "기금의 목적이 제각각인데 기재부는 원칙적으로 기금을 잘 관리해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조직이라 평가도 관리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현재는 운용 결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기재부가 제시한 문제를 푸는 아웃풋 정도의 방식에 그치고 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평가해도 개선은 '제자리' 
 
지난해 3월 김동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가운데)과 유병서 예산총괄심의관(오른쪽) 등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과 2024년 조세지출 기본계획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마다 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결과가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금평가는 점점 고도화되고는 있지만 부처 입장에선 행정적 부담만 늘어날 뿐 개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기금 통폐합 권고가 내려져도 부처 간 이해관계나 조직 논리에 가로막혀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관계자는 "타 기금과 통합하거나 폐지를 권고받은 기금도 실제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빈번해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금마다 소관 부처와 관리 주체, 이해관계자가 모두 달라 권한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수혜 대상은 물론 노동계와 기업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도 거세며, 통합 시 자산·부채, 채권자·수혜자 간 권리 관계 조정이 필요해 실무적 장벽도 큽니다. 
 
또한 평가 결과보다는 정치적 판단이나 외부 환경 변화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신희진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기금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수행을 위한 재원이어야 하지만, 정치적 판단이나 외부 변수에 쉽게 흔들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금의 장기적 목표와 무관하게 외부 변화에 따라 예산이 급감하거나 대체 재원 없이 기금이 조정되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런 구조에서는 존치평가가 실질적인 판단 자료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금사업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반복되지만 개선되지 않는 사례도 있습니다. 실제로 2021년 적정성 평가에서 개선 권고를 받은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의 비축지원사업과 식품외식종합자금사업, 농어업재해보험기금의 농어업재해 재보험금사업 등은 2024년에도 동일한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았습니다. 이는 평가 결과가 기금 운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평가단 구성도 '깜깜이'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8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금운용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할 외부 평가단 구성에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2025년 기금운용평가단은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 교수를 단장으로 자산운용평가팀 16명, 대규모팀 4명, 기금존치평가팀 15명 등 총 36명으로 구성됐습니다. 구성원 대부분은 대학교수나 연구원인데요. 평가단은 기재부가 위촉한 인사들로 꾸려지며, 선정 기준이나 인적 풀(pool)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 교수는 "외부 인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평가를 맡는다 해도 결국 기재부가 위원회를 선정하는 구조"라며 "관리하는 집단이 주도하고 기재부가 임명한 사람들이 평가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전문가 풀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면서 "모두 기재부가 보유한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기반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단장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 선발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선정 기준이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기금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지닌 구조임에도 기금운용과 관련된 의사결정 구조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나 채널이 상당히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평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단일 부처나 관료 조직에 종속되지 않는 평가 구조를 만들고, 다양한 사회 주체가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 교수는 "기금은 법에 명시된 목적에 맞게 사용돼야 하며,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미래 지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거버넌스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2023회계연도 기재부 세입세출 및 기금 결산 사업설명 등 보고 자료집 등이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오승주·이지우·김지평 기자 sj.o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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