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냉장고 정리를 하다 보면 유통기한이 지난 채 봉지째 버리는 식품들이 수북이 나와요.”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3)씨의 말처럼 빠른 배송은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불필요한 소비와 음식물 폐기라는 문제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24일 환경부의 최신 자료인 제6차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일회용품 폐기물량은 37.32g, 연간 13.6kg에 달합니다. 전체로 보면 무려 70만3327톤의 일회용품이 폐기되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상당수가 빠른 배송, 특히 새벽배송과 연관된 폐기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국민 1인당 하루 일회용품 폐기물량. (그래픽= 뉴스토마토)
새벽배송을 주 2~3회 이용한다는 김수진 씨(가명)는 “쿠팡 로켓프레시에서 3개 묶음 샐러드를 특가로 구매했는데, 하나는 이미 상했고 하나는 유통기한이 하루 남았다. 반품 신청해봤자 자체 폐기하라고 안내하니 결국 소비자에게 쓰레기를 떠넘기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이커머스업계에서 새벽배송의 평균 반품율은 8~10% 수준으로 일반 택배(2~3%)보다 약 3배가량 높습니다. 특히 신선식품의 경우 유통기한이 짧고 보관에 민감해 ‘상품 상태 불량’으로 인한 반품이 잦은데요. 이처럼 반품된 식품 상당수는 재판매 불가로 판단돼 그대로 폐기됩니다. 게다가 배송 지연은 식품 폐기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죠.
쿠팡과 컬리는 신선식품의 경우 반품된 제품을 재판매하지 않고 대부분 폐기 처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쿠팡은 일정 조건에 따라 반품 자체를 받지 않고 소비자에게 ‘자체 폐기’를 안내하고 있죠. 컬리 역시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훼손 가능성이 있는 식품은 무조건 전량 폐기하거나 소비자 측이 폐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처럼 식품 안전이나 위생 관리 차원에서 기업이 ‘적극적인 폐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상은 회수도 재활용도 불가능한 음식물 쓰레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반품을 거부하거나 자체 폐기를 권장하는 행위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를 소비자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식품 외 일반 상품의 경우 쿠팡은 반품된 제품을 ‘미개봉’, ‘최상’, ‘상’, ‘중’ 등으로 등급 분류한 뒤 재판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컬리 역시 뷰티 제품은 전량 폐기하거나 임직원 할인용으로만 사용하고, 비식품군은 미사용 여부에 따라 양품화해 재판매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식품 폐기에 있어서는 두 회사 모두 실질적인 재활용이나 감축 시스템 없이 ‘폐기=안전’이라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생을 명분으로 한 구조적 낭비”로 지적합니다.
서울시의 생활폐기물 발생량과 플라스틱 폐기물량 수치. (이미지= 뉴스토마토)
식품뿐만 아니라 포장재 역시 심각한 환경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빠른 배송을 위해 제품 하나하나를 개별 포장하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팩, 스티로폼 박스, 비닐 완충재 등을 과다 사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환경부가 온라인 식품 배송에 사용된 아이스팩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고흡수성수지가 냉매로 들어 있는 아이스팩의 비중이 약 40%에 이르는 등 환경오염 우려가 높게 나타났는데요. 이 중 대부분은 젤 타입으로 재활용이 어렵고 일반쓰레기로 소각 처리되며, 그 결과 포장재 쓰레기의 양과 질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서울시 폐플라스틱 관리체계 개선방안 보고서(2024)엔 서울시의 생활폐기물 발생량과 플라스틱 폐기물량은 지난 10년간 모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특히 플라스틱의 경우 2013년 1인당 0.072kg/일에서 2021년 0.283kg/일로 약 3.9배나 증가하였습니다. 재활용 비율도 문제입니다. 생활계 폐플라스틱의 성상을 분석한 결과 종량제 플라스틱과 재활용 잔재물, 비닐류 등 재활용 효율이 낮은 형태의 폐기물 비중이 크고 명칭과 분류 체계도 기관마다 달라 일관성 있는 재활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났죠.
쿠팡에서 고추 절임 한 개를 구매했는데 여러 개의 아이스팩이 담겨 있는 모습. (사진= 독자 제공)
업계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친환경 포장을 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컬리의 '퍼플 박스', 쿠팡의 '프레시백' 등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이 다회용 포장재를 도입했지만 낮은 회수율과 제한적인 적용 범위, 소비자 불편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환경 효과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한국보다 앞서 이커머스 환경 문제에 직면한 해외 국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독일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엄격하게 적용해 이커머스 업체에 포장재 등록과 재활용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포장 종류와 양에 따라 라이선스 비용을 책정해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죠.
일본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품 유통기한 표시의무를 강화하고 신선식품의 경우 소비자에게 ‘배송일 기준 소비기한’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유통기한 오인으로 인한 소비자 반품 및 식품 폐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단순한 캠페인이나 시범사업을 넘어서 법적 강제력과 투명한 정보 제공, 책임 있는 포장 감축을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는 대부분의 친환경 포장 대책이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목소리기 제기되는 이유죠.
빠른 배송이 무조건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올해 3월 실시한 친환경 제도 이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소비자 과반수인 66.4%가 포인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면 배송이 느려져도 이를 감수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는데요. 이는 유통업계가 무작정 속도 경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친환경 소비 유인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결국 친환경 배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업의 구조적 개선과 소비자의 의식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했습니다. 미래소비자행동 조윤선 사무총장은 “쿠팡 박스 같은 경우 도로에 방치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고, 소비자가 반납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빠른 회수가 어렵다”며 “회수율이 낮다는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돼왔다. 특히 다회용 박스를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상태가 지저분해져 이를 꺼리는 소비자도 많기에 다시 일회용을 선택하게 되는 역효과가 생기기도 한다”며 기업의 관리 측면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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