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 에어컨 틀지 않고 버티고 있지. 집주인이 에어컨 틀지 말라고 따로 말하지는 않는데. 난 돈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24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그늘에 앉아 고물상에게 갖다 줄 폐전자제품을 정돈하던 쪽방 거주자 A(70대·여)씨는 "낮에는 밖에서 폐지나 폐전자제품을 모으고 밤에는 찬물로 씻은 다음 선풍기를 트는 게 더위를 나는 방법"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 전역에 폭염경보가 발령됐습니다. 폭염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이틀 연속 35도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될 때 발효됩니다. 용산구 기온은 이날 오전 10시46분에 31도였고, 오후 1시51분에는 34도에 이르렀습니다.
24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쪽방은 더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간입니다. 건물이 단열되지 않고, 집주인은 전기 요금이 아까워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라도 좀처럼 틀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쪽방에 사는 거주자들로서는 다른 주거지로 옮기지도 못하고 더위를 감내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에 서울시청은 에어컨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쪽방 거주자가 여름 3개월간 사용하는 전기 요금을 월 최대 10만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씨는 전기 요금 지원 정책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서울시가 전기 요금을 지원하는데 왜 에어컨을 안 트냐'는 질문에 A씨는 "그 지원금은 국가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거고 나는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샤워기가 고장이 났지만 고치는 데 20만원이 든다고 해서 고치지도 못하고 있다"며 "대야에 물 받은 다음 몸에 끼얹어서 열을 식힌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쪽방 거주자들도 더위에 허덕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쪽방촌 골목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던 거주자 B(70대)씨는 "집주인이 요금 많이 든다고 에어컨을 안 달아준다"며 "더워서 쪄 죽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쪽방하고 다를 바 없지만, 집주인이 쪽방 등록을 취소해버린 곳에 사는 거주자도 있었습니다. 이모(60세)씨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버티려니까 더워서 죽겠다"며 "2~3년 전 쪽방 등록이 취소되는 바람에 근처 서울역쪽방상담소로 더위를 피하러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일회용컵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일회용컵에는 얼음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날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세탁실, 제빙기와 골목길 쿨링포그 등 폭염저감시설 작동 여부를 점검했습니다. 쪽방을 방문해 에어컨 운영 실태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24일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앞서 서울시청은 쪽방촌들에 설치된 야간 '밤더위 대피소' 운영 기간을 기존 62일에서 82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대피소 운영 기간은 6월1일부터 9월30일까지입니다. 이 중에서 7·8월엔 대피소가 매일 운영됩니다. 6월과 9월엔 폭염 예보 발령 시기에만 대피소의 문이 열립니다.
서울시청은 쪽방상담소 내에 무더위쉼터를 조성하고, 쪽방촌을 순찰하는 특별대책반과 건강 취약자를 매주 두 차례 방문하는 쪽방간호사를 운영합니다. 공용 에어컨 가동 여부 등 쪽방촌 냉방 실태를 모니터링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서울시청은 올해부터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를 활용해 무더위쉼터에서 폭염 시간대 문화 활동을 지원합니다.
쪽방촌이 있는 종로·용산·중·영등포구청 등 각 구청들은 서울시 대책을 각자 구체화했습니다.
종로구의 경우, 쪽방상담소 두 곳이 쪽방촌 특별대책반을 운영합니다. 돈의동 쪽방상담소는 돈의동 쪽방촌과 종각역, 탑골공원 주변을 돌고 창신동 쪽방상담소의 경우 창신동 쪽방 지역과 동대문역, 동묘역 주변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종로구 내에서 무더위쉼터에서의 폭염 시간대 문화 활동 프로그램 내용은 쪽방촌마다 갈립니다. 돈의동은 한지공예, 창신동은 원예입니다.
동자동 쪽방촌이 있는 용산구청도 폭염 시간대 문화 활동으로 '영화 인문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폭염 특보가 발령되면 폭염대책본부를 가동해 노인·쪽방 거주자·폭염 취약계층 안전을 챙기기로 했습니다. 용산구청은 노숙인 밀집 지역과 쪽방촌 거주자가 이용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 여섯 곳을 따로 지정하고, 인력 6명이 순찰하면서 쉼터 이용과 시설 입소를 안내하는 중입니다.
24일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남대문 쪽방촌이 있는 중구청의 경우 거리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 보호·지원을 위해 하루 두세 차례 현장 순찰을 실시합니다. 또 이들에게 건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필품을 지급하며 쉼터를 안내합니다.
영등포구는 노숙인과 별개로 쪽방 거주자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 중입니다. 특별보호 대상자를 선정해서 정기적으로 간호사가 방문하는 겁니다. 응급 구호품 등 생필품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또 거주자가 외부 의료기관 진료받으러 갈 때 쪽방상담소가 검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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