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신수정 기자]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기도 전에 금융권에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다퉈 상표권부터 출원부터 하며 선점 경쟁을 벌이고 기술 개발에도 나섰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 주체인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스테이블코인 상표 출원만 수백 건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원화(KRW)로 된 상표등록만 수백 건에 달합니다. 특허정보 검색서비스 키프리스에 따르면, 토스뱅크는 'KRWTBK', 'KRWTSB', 'TSKRW' 등 포함해 총 48건으로 가장 많은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출원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올해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 출원 건수는 275건 수준이며, 출원 주체는 약 23곳에 이릅니다.
이처럼 과열 양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규제 전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하기 위함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표권이란 게 늦으면 다른 곳들이 선점한다"며 "이 경우 우리가 쓰고 싶은 걸 못 쓸 수 있어서 우선 상표권 등록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융업계에선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지급결제 기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신한은행은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결제에 대한 PoC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PoC는 본격적인 서비스 도입에 앞서 기술이나 사업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실험·검토하는 절차입니다. 신한은행은 발행의 근거가 확보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찍고, 이를 자사 배달 앱인 땡겨요 결제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한 다른 시중은행들도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PoC를 검토 중입니다. 은행권 공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 중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 역시 세부 사업 방안 수립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와 관련해 다른 업체들도 기대감과 '혹시 모르니까'라는 마음이 다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그는 "한국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많이 늦다고 한다"며 "한국은 늦어지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을 하긴 해야 되는 상황이고, 규제는 있으니 계속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홍콩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도 하고 ATM에서 홍콩 스테이블 코인, 미국 US 스테이블 코인을 구매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산업계에서도 예금 토큰의 발행 및 결제까지의 서비스를 상용화한 기술력을 개발하고, 자체 플랫폼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결제 대비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합니다. 삼성 SDS와 LG CNS는 기술 플랫폼 측면에서 블록체인 인프라 구축 역량을 선점하며, 금융권과 연계된 사업 기반을 확보 중입니다. 다날과 카카오페이는 소비자(리테일) 중심의 온체인 결제 서비스 준비로, 향후 QR 결제, 개인 간 직접거래(P2P) 송금 등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사진=연합뉴스)
한은 '부정적'-국회 논의 '지지부진'
그러나 국회 입법은 더딘 상황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입법 추진 중인 상황을 핑계로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공개(ICO)에 해당한다'며 불허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가장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건 한국은행입니다. 한은은 통화정책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 대체재라 비은행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이 상당히 저해될 수 있다"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습니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최근 금융업계의 스테이블코인 출원 움직임에 "시장에서는 법제화 기대감에 업체들이 미리 나서는 것 같은데 저희가 상표권 출원 자체에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진척이 없습니다. 앞서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스테이블코인 인가제를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가제 △가상자산 거래 지원, 유지, 종료 절차에 대한 규정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시세 조종, 부정 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금융위원회에 가상자산 사업자 감독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민 의원이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을 발의한 이후 국회에서의 논의는 활발하지 않습니다. 스테이블코인 국회 입법 지연 이유는 민생 법안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 일정상 경제·복지·안전 등 민생 관련 법안들이 우선 처리 대상입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 기반인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금융위원회 폐지 등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지연 중인 데다 국회 정무위 내 비슷한 법안이 많아 병합 작업을 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 전망입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야 의원 발의안 20여건 이상이 병합 심사 중입니다. 핵심 이견은 스테이블코인의 지급결제 기능 허용 여부, 발행 주체, 규제 주체 등입니다. 스테이블코인에 지급결제 기능을 포함할 경우 코인이 사실상 화폐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집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서둘러 입법하면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하는 만큼, 해당 논의는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큽니다.
전문가 "미국 지니어스법 모범 사례 될 것"
전문가들은 기존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특정금융정보법 만으론 모호하기 때문에 별도의 '스테이블코인법' 또는 디지털자산기본법 내 하위 챕터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 발행 주체와 준비금 수탁·관리 주체를 분리해 이해 상충 방지 및 자산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금융사 또는 인가 받은 핀테크 기업에 한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제한적 발행을 허용하는 등의 대안도 제시됩니다. 아울러 'KRW', '원화' 등의 명칭은 한국은행과 협의를 의무화해서 사용 조건을 명확히 해 통화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업권별로 의견이 갈라지는 것은 다양성 차원에서 나쁠 건 없다"면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것이면 신속하게 법을 만들면 된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발행 주체, 준비금 수탁 및 관리 주체 등 이해 상충 등과 관련해 미국의 지니어스법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임유진·신수정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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