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AMP 모델 개요. a) 사전학습 과정: LLAMP 모델은 약 170만 개의 펩타이 서열로 사전학습되어 서열 패턴을 학습함. b) 미세조정 과정: 이후 균종별 활성을 학습해 MIC 값을 예측함. c) AI 기반 스크리닝 과정: 학습된 모델과 펩타이드 특성을 활용해 효과적인 후보를 선별함. (사진=GIST)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항생제는 인류가 감염병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사용은 새로운 위협을 낳았습니다. 유전자 변이를 통해 여러 항생제에 동시에 내성을 갖는 다제내성균(MDR, Multidrug-Resistant bacteria)이 등장하면서 기존 항생제를 이용한 치료법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다제내성균은 자연선택이나 돌연변이를 통해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 임상에서 감염병 치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제한적입니다. 특히 병원 내 감염을 유발하는 이스케이프(ESKAPE) 병원균은 독성과 내성 모두 강해 전 세계적으로 치료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AI를 활용해 내성균 맞춤형 항생제 설계 기술을 개발하고, 그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저널 <생명정보학 브리핑(Briefings in Bioinformatics)>에 7월18일 발표했습니다.
AI와 유전체 정보의 융합, 'LLAMP'의 탄생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남호정 교수와 화학과 서지원 교수 공동 연구팀은 항균 펩타이드와 박테리아 유전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모델 ‘램프(LLAMP, Large Language model for AMP activity prediction)’를 개발했습니다.
이 모델은 약 170만개의 펩타이드 서열과 4만 개 이상의 항균 활성값(MIC) 데이터를 학습하고, 박테리아 종별 유전체 정보까지 통합해 감염원에 최적화된 펩타이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특히, 기존 모델은 박테리아의 종류를 고려하지 못했으나, LLAMP는 균종 특이성까지 정밀하게 반영하는 것이 강점입니다. LLAMP는 사전학습(pre-training)과 미세조정(fine-tuning) 과정을 거쳐 항균 펩타이드의 최소억제농도(MIC, Minimum Inhibitory Concentration)를 정밀하게 예측합니다. 이 최소억제농도는 특정 항균제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가장 낮은 농도를 의미합니다. MIC 값이 낮을수록 해당 항균제의 효과가 우수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항생제의 효능 평가 및 적절한 투여량 결정에 중요한 지표로 활용됩니다.
연구팀은 자연계 펩타이드 서열 약 500만개를 스크리닝(screening)하고, 어텐션(attention) 분석을 통해 항균 활성을 유도하는 핵심 아미노산을 규명했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펩타이드를 재설계한 결과, 강력한 내성을 가진 ESKAPE 병원균에 대해서도 최소 3.1마이크로몰(μM) 수준의 MIC를 기록하며 탁월한 항균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이는 기존 항균 펩타이드 AI 모델에 비해 예측 정확도는 최소 4%에서 최대 9%, 활성값 예측력은 최대 40%까지 개선된 수치입니다. ESKAPE 병원균은 장알균(Enterococcus faeci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엔테로박터류(Enterobacter) 등 독성이 강하고 항생제 내성을 많이 가진 여섯 종류의 병원균을 가리킵니다.
펩타이드 13 및 유도체의 구조 분석. 나선휠과 3D 구조를 통해, 양전하(보라색), 소수성(회색) 등 잔기의 특성과 치환/절단 부위를 시각화함. 화살표는 소수성 모멘트를, ‘N-term‘, ‘C-term‘ 표시는 말단 위치를 나타냄. (사진=GIST)
치료제로서의 가능성: 독성 안전성 확보
항균 효과만큼 중요한 것이 안전성입니다. 연구팀은 LLAMP가 설계한 펩타이드들의 적혈구 용혈독성을 평가했고, 이는 이미 임상 3상까지 진행된 항생제인 펙시가난(pexiganan)과 유사한 수준으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펩타이드의 구조 분석을 통해 항균성이 우수한 물질들은 양친매성(amphiphilicity)과 나선형 구조를 기반으로 세균 세포막을 직접 파괴한다는 메커니즘도 밝혀냈습니다. 이는 기존 항생제 내성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병원균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대안임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진화하는 내성균에 실시간 대응하는 AI 신약 플랫폼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항균 물질을 발굴한 것을 넘어, 병원균 유전체 정보 기반으로 항균제를 설계하고 실험까지 검증하는 전주기 AI 플랫폼을 구현한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향후 새로운 내성균이 출현했을 때 '유전자 분석 → 후보물질 도출 → 실험검증'까지 빠르게 이어지는 대응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GIST 남호정 교수는 “이번 연구는 AI가 단순히 과거 데이터를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병원균의 유전체 특성을 분석해 새로운 항균제를 ‘설계’하는 능력을 입증한 사례”라며, “균종 특이적 펩타이드를 발굴해 내성균에 특화된 항생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모델과 차별화된다”고 강조했습니다. AI-제약 융합의 성과를 보여주는 이번 연구가 인류의 감염병 대응 역량의 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왼쪽부터)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남호정 교수, 화학과 서지원 교수,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배대훈 석사, 화학과 김민상 박사과정생. (사진=GIS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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