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과 희토류의 맞교환. 봉합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던 미·중 관세전쟁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석유를 매개로 한 중국 압박, 유럽을 향한 반중국 공조 요구까지. 무역 갈등은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 국제질서 자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타깃은 '러시아 돈줄'인데…"중국에 100% 추가 관세"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은 21일(이하 현지시간) "미·중 관세협상은 매우 좋은 상황"이라며 "이제 다른 사안도 논의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가 꺼낸 논의 대상은 '중국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이었습니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이 제재 대상국인 러시아 석유를 매우 많이 수입하고 있다"며 "석유를 사는 나라는 100%의 2차 관세를 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러시아가 50일 내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 거래국에 100%에 달하는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한을 통첩했는데, 이에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최근에야 깨달은 모양새입니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엔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직접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 러시아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석유 생산국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석유 판매 총수입은 1920억달러(약 266조원)였습니다. 이는 러시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며, 연방예산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러시아산 석유 공급을 모두 차단하면, 미국 물가를 지탱하고 있는 유가는 급등 수순입니다. 물론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친미 산유국에 증산을 요청할 순 있겠지만, 중동에서 분쟁이 격화돼 유가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이를 완충할 수단은 사라지는 셈입니다.
도널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을 갖기 위해 자리로 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U와 갈라치고…"중국, 산업구조까지 바꿔라"
실현가능성은 미지수지만, 베센트 장관은 강경합니다. 그는 "8월1일(상호관세 유예시한)까지 합의하는 것보다 질 높은 무역합의에 더 관심이 많다"며 자신감도 드러냈는데요. 일단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더 구체적이고 많은 요구를 하면서 미국에 최대한 유리한 식으로 판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는 "2차 관세를 시행하면, 유럽 동맹이 우리를 따를 것을 촉구한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이유로 미국이 중국에 2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유럽도 중국에 대해 같은 조치를 도입하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중국은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최대 쟁점이라고 할 희토류 자석 수출을 대폭 늘렸습니다. 지난달 중국산 희토류 자석의 43%가 EU로 수출됐는데, 이는 전월(32%) 대비 대폭 늘어난 비중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확대했지만, 이는 H20 수출 허가와 맞교환한 성격이었습니다. 반면 EU에는 별다른 대가 없이 수출을 허용했습니다.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은 EU 등과의 협력 강화로 돌파구 마련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과의 '반중 공조'를 시사한 것은 중국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큽니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온 '과잉 생산' 문제도 의제로 삼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과잉 생산한 제품을 유럽·캐나다·호주·글로벌사우스(비서구권 국가)에 대거 수출하고 있다"며 "다음 협상에서 중국이 수행해야 할 경제구조의 대대적인 전환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중국 산업 구조를 미국 중심 질서에 부합하도록 전환하라는 요구로 읽힙니다. 러시아는 중국에 가장 중요한 동맹이기도 한데요. 하나하나가 중국으로선 '내정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실제 100% 2차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이 합의를 파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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