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교수는 지적재산권과 인공지능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사진=서경주 객원기자)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커뮤니케이션북스가 발간하고 있는 '인공지능총서'의 저자들이 최근 ‘인공지능 3대 강국, 국민들의 AI 리터러시 향상이 우선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해서는 기술 못지않게 국민들의 AI 리터러시 향상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공지능총서 저자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승재 세종대 교수(변호사)를 광화문 사무실에서 인터뷰했습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이 저작권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학습한 행위가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 이용’은 저작권 소유자의 허가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자 AI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핵심적인 법적 방어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법적 판단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시는지요?
이런 미국의 판결에 대해 국내 언론에도 가끔 소개를 하고 있는데 사안을 나누어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공정 이용(fair use) 여부는 사안별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미국 법원에서는 창작물의 변형적 이용 여부, 그리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책을 보지 않고 인공지능이 학습한 내용의 결과물로 정보를 얻는다는 점을 주로 봅니다.
변형적 이용이 법원에서 인정됐다는 것은 사안에 따라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런 사안이 모두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안이 공정 이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면책이 된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앤디 워홀이 가수 프린스의 사진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 것이 공정 이용이 아니라고 법원이 판시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창작물을 학습해 변형하는 것도 공정 이용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판결에서 나타난 것은 공정 이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단히 가져다 쓰는 것까지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인공지능 학습과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서 별도로 법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넣었던 조건 중에 하나가 ‘적법한 접근(legal access)’입니다. 그런 경우에만 면책을 시켜주겠다는 것입니다. 무단으로 다운로드를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학습해 결과를 내놓는 것을 공정 이용이라고 하는 것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공정 이용이라고 인정되는 사건들이 누적되면 원저작물을 만들어낸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언론사들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창작의 주체’ 개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법률가로서 인간의 창작과 기계의 생성물 사이에 어떤 핵심적 경계가 존재한다고 보시는지요?
그 문제에 있어서도 ‘창작물’을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두뇌로만 만든 창작물, 인공지능으로만 만든 창작물, 인간과 인공지능이 컬래버레이션을 해서 만든 창작물이 있겠지요. 사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말에는 약간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협업은 둘 이상의 독립된 행위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이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한 것입니다. 사실은 AI가 나오기 이전에 인간이 창작하는 데 동원된 것들은 하나의 재료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재료나 도구를 사용해서 창작하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인공지능이 창작한 저작물, 이것도 사실은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했다고 볼 수 있는 저작물은 아직 없습니다. 스티븐 탈러(Stephen Thaler)는 인공지능인 ‘창작 기계( Creativity Machine)’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최근에 도달한 천국의 문(A Recent Entrance to Paradise)>이라는 이미지의 저작권을 등록하려고 했습니다.그러나 2025년 3월 미국 워싱턴 D.C. 연방순회법원은 저작권 보호는 ‘처음부터 인간이 저자(author)로 창작한 작품’에 한해 적용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결국 인공지능만으로 만든 ‘법적 저작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탈러는 인공지능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최소한의 기여는 했기 때문에 순전히 인공지능이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중간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제가 생성형 인공지능에 세부적인 사항을 요구하는 여러 번의 프롬프트를 입력해서 어떤 이미지를 그린다면, 이때의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인간이 사용한 붓과 같은 도구냐, 아니면 창작의 주체냐”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붓으로 보면 그 이미지는 인간의 창작품이지만 붓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 혹은 주체들 가운데 하나로 본다면 문제는 복잡해 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처럼 중간에 속하는 것들이 앞으로 창작의 주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작곡할 때, 이미지를 그릴 때, 심지어 시나 소설을 창작할 때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도구인가 창작 활동의 주체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 많은 논란이 되리라고 봅니다.
현행 한국 저작권법은 이러한 AI 관련 문제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의 현행 저작권법은 당연히 인공지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공정 이용과 관련된 부분에서 저작권법 제35조 3항은 사실 한미FTA의 결과물입니다.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공정 이용 조항을 넣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농산물 등을 보호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미국 측이 요구하는 안을 많이 수용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법체계에는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영미법은 법원이 유연한 해석을 통해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반면, 대륙법은 법에 명시된 예외 사항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저작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대륙법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 시사 보도를 위한 예외, 학교 교육을 위한 예외 등등으로 면책 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면책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작권을 인격권 차원으로 더 중요하게 봅니다.
반면에 영미법은 저작인격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미법에서는 복제권(copyright)이라는 용어를 쓰고 독일에서는 저작권(urheberrecht)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문자 그대로 영미법에서는 복제와 배포가 그 중심에 있고 대륙법에서는 창작자의 인격적 권리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대륙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니 영미법적인 요소가 들어온 독특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가 되니까 사안별로 판례를 적용할 수 있어서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인공지능 관련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주로 인공지능의 발전 자체를 궁극적인 가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저작권, 개인정보보호와 인격권이 인공지능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미 우리 법체계에 들어 있는 영미법적인 요소를 현실에 적용해 본 연후에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서도 새로운 인간의 창작물들이 계속 투입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 보호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에 새로운 ‘인간의 창작물’이 투입되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결과물의 퀄리티가 점점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개인정보나 인격권의 문제를 말씀드리면 “중국을 보라”고 충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을 내놓는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데 저작권, 개인정보 보호, 인격권 등을 시시콜콜 따지면 따라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거꾸로 그분들에게 “우리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달성하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 우리 국가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인공지능 총서 모임’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으며, 현재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해주시지요.
제가 원래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저작권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출판사 편집장께서 인공지능 총서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자 확보, 주제 선정, 시장의 반응 등 고민이 많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조언을 구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팔릴지 안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관련 총서는 꼭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총서에는 해당 분야의 역사를 정리하는 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제가 맨 먼저 『인공지능의 역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필자도 소개하고 주제도 제안하면서 출판을 하다 보니까 지금 300권이 넘는 총서가 나오게 됐습니다. 총서 집필에 참여한 저자도 200분이 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책만 내는 데 그치지 말고 바람직한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에 총서와 필진을 활용해보자고 제안하셔서 일단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직 세부적인 조직이나 활동 계획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AI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기술자들은 기술 자체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몰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모임이 아실로마 인공지능 원칙(Asilomar AI Principles)과 같이 AI 개발과 사용을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자들마다 AI를 보는 관점이나 기대가 다를 텐데, 하나의 모임을 구성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습니까?
그냥 “우리가 이렇게 많이 같은 분야의 책을 냈으니 뭔가 만들자”라는 정도의 공감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관통하는 가치나 방향 같은 것은 아직 없습니다.
일반 창작자나 교육자, 학생들은 아직 AI에 대해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이 새 정부에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국민들의 AI 리터러시 향상을 요구했죠.
저희가 이재명정부에 8개 정책을 요구했지만 사실 한 줄로 요약하면 AI 격차(AI divide)를 줄이고 AI 문해력(AI literacy)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에 대해서는 모든 저자들이 모두 공감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AI는 인간적 AI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사회를 분열시키면 8 대 2의 사회가 아니라 99.8 대 0.2의 사회가 된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에 자본이 집중되면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인공지능을 쓰느냐 못 쓰느냐, 어떤 인공지능을 쓰느냐에 따라 인간의 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질 것입니다. 디지털 격차가 문제가 되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AI 격차가 생길 겁니다. AI에 접근해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계급으로 사는 디스토피아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복과 인간 사회의 화합을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정부가 AI 강국을 국가적 아젠다로 내 세우고 있습니다. AI에 국가 주권(sovereignty)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소브린 AI(sovereign AI), 즉 한국만의 AI를 만드는 문제를 저는 이상론과 현실론으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론적 관점에서 보면 저희가 무제한의 인적·경제적 자원을 투입해서 미국이나 중국의 AI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국가적인 모델을 만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봤을 때, AI도 층위가 있는데 트랜스포머 같은 기층 모델, 그다음에 빅데이터를 집적해 응용하는 모델 단계가 있고 다시 엑스포터 시스템(exporter system)이 있는 데 과연 우리가 어떤 단계에서 시작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어느 한 단계를 선택해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AI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모든 단계를 아울러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전투기 분야에서 T-50이나 KF-21 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비관적으로 보거나 공격하거나 미국에서 사서 쓰는 게 낫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소브린 AI는 쉽지 않겠지만 AI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가적 아젠다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넥서스』에서 인공지능을 초국가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선거 조작, 사회 통제, 진실 해체 같은 문명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AI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인공지능을 공대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들과 대화해보면 모든 규제를 다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 같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통제되지 않는 AI는 많은 사람들을 쓸모게 만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쓸모’라는 말이 굉장히 조심스럽긴 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쓸모없다고 불필요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점에서는 AI의 미래를 논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라리의 우려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승재 교수가 저술한 저작권과 인공지능 총서의 일부. (사진=서경주 객원기자)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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