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AI 의존으로 인한 '인지 부채' 증가
MIT 미디어랩 연구팀, AI 사용 뇌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25-07-15 09:02:42 2025-07-15 14:09:04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은 생각을 덜하게 될지 모른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인정한다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사진=위키피디아)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말은 개념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머리는 써야 좋아진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인지 부채는 이 속설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정보 처리, 기억, 판단, 창의적 사고 등 인간의 인지 기능을 외부 도구에 반복적으로 의존하면서 생기는 누적적 인지 저하 현상”입니다. 부채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지금은 편의를 누리지만 미래에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AI는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일을 쉽게 해결해줍니다. 시간이 갈수록 AI는 무소부지(無所不知)의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I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인간은 머리를 덜 쓰고 있습니다. 인지 부채는 이런 환경에서 발생합니다. 
 
미국 MIT 미디어랩의 나탈리야 코스미나(Nataliya Kosmyna) 박사 연구팀은 인공지능 도우미, 특히 챗GPT(Chat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에세이 작성이 인간의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결과를 코넬 대학이 운영하는 논문 저장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발표했습니다. 논문 제목은 “챗GPT를 사용할 때 당신의 뇌는 어떻게 변할까: 에세이 작성 과제에서 AI 도우미 사용이 초래하는 인지 부채의 축적(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입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챗GPT와 같은 LLM을 에세이 작성에 도입했을 경우 인지적 참여도(cognitive engagement), 창의성, 기억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데 있었습니다. 특히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문제 해결을 AI에 의존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인지 능력 저하 또는 ‘인지 부채’가 축적될 수 있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생각을 덜 하면 인지 부채 쌓인다
 
연구진은 18세에서 39세 사이의 성인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외부 도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두뇌만으로 에세이를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검색 엔진만 사용할 수 있었고, 세 번째 그룹은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총 네 번의 에세이 작성에 참여했고, 네 번째 세션에서는 그룹 간 조건을 바꾸는 교차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AI 도우미 사용 경험이 뇌 활동과 사고 패턴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를 비교했습니다. 
 
모든 참가자는 32채널 뇌파기록(EEG) 헤드셋을 착용하고 에세이를 작성했으며, 알파, 베타, 세타, 델타 등 브레인네트워크 연결성을 측정했습니다. 언어 분석 면에서는 고유명사(개체명)를 인식하고 분류하는 NER(Named Entity Recognition), 텍스트 패턴과 빈도를 분석하는 n-그램 분석, 전체 문서의 주제와 의미를 분석하는 토픽 온톨로지 분류 등을 활용하여 각 그룹의 언어적 특징과 동질성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작성한 에세이를 인간 교사와 AI 채점 시스템을 통해 평가했습니다. 
 
AI 사용 그룹, ‘인지 부채’ 누적 가능성 보여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뇌의 서로 다른 부위들 간의 기능적, 구조적, 또는 효과적인 연결 상태를 의미하는 뇌 연결성(brain connectivity)의 차이였습니다. 두뇌만 써서 에세이를 작성한 그룹은 가장 활발하고 넓은 영역의 뇌 연결성을 보였으며, 검색 엔진 사용자 그룹은 중간 수준, LLM 사용자 그룹은 가장 약한 수준의 연결성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외부 도구, 특히 LLM에 의존할수록 자신의 사고력을 활용하는 뇌의 활성도가 줄어든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기억력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LLM 사용자들은 자신이 방금 작성한 문장을 정확히 재인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83%에 달했지만, 두뇌만 사용한 그룹이나 검색 엔진 사용자들은 대부분 정확히 기억해냈습니다. 글에 대한 소유감도 AI 사용 여부에 따라 달랐습니다. LLM 사용자들은 자신이 작성한 글에 대해 ‘내 글’이라는 인식이 현저히 낮았으며, 반대로 뇌만 사용한 그룹은 높은 소유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AI가 글을 대신 작성해 준다는 경험이, 사고의 주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네 번째 세션의 크로스오버 실험은 AI 사용이 뇌에 남긴 흔적을 더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LLM에서 비도구적 조건으로 전환된 참가자들은 여전히 낮은 뇌 연결성, 약화된 기억력, 회복되지 않은 창의성을 보였으며, 반대로 뇌만 사용하는 조건에서 LLM으로 전환된 참가자들은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며 뇌 활성도나 기억력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는 AI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사고의 자율성과 창의성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됩니다. 
 
AI의 인지적 영향, 실험으로 확인돼
 
이 연구는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예비 결과라는 점에서 신중한 해석이 요구됩니다. 참가자 수가 제한적이고, 실험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는 점, 에세이 작성이라는 단일 과업에 국한된 결과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AI에 의존하는 것이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뇌의 기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이나 직장에서 AI 사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문서 작성, 아이디어 정리, 이메일 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챗GPT 같은 LLM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MIT 연구진의 이번 연구는 단기적 효율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간 고유의 사고 능력과 창의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집니다. 
 
MIT 미디어랩 연구팀의 연구결과 AI로 에세이 작성 과제를 수행한 그룹이 방금 작성한 문장을 기억하지 못하는 비율은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GettyImages)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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