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식형 장치는 피하에 삽입될 수 있는 글루카곤 저장고를 탑재해 당뇨병 환자가 위험한 저혈당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MIT)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1형 당뇨를 앓는 아이의 부모는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잦습니다. 아이를 혼자 자도록 둘 수 없고 밤마다 아이 곁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족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주역은 MIT가 개발한 손톱 크기의 이식형 응급장치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연구진은 7월9일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생명을 위협하는 저혈당 상태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피하 이식형 응급장치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장치는 25센트 동전 크기로, 인체 내에 삽입되어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면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을 자동으로 방출합니다. 주사나 버튼 조작 없이, 무선 신호에 의해 작동되는 이 장치는 수면 중이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즉시 대응 가능하다는 점에서 ‘디지털 생명선’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혈당 조절, 생명을 좌우하는 1형 당뇨
1형 당뇨병은 자가면역 반응에 의해 췌장 베타세포가 파괴되어 인슐린을 생성하지 못하는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인공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슐린의 과다 투여나 식사 거르기, 격렬한 운동 등으로 인해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저혈당증(hypoglycemia)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학적으로 혈당이 70mg/dL 이하로 떨어지는 상태를 저혈당이라 합니다. 심할 경우 발한이나 혼돈, 실신, 경련을 일으키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특히 혈당이 50mg/dL 이하로 떨어지면 뇌는 포도당 공급 부족으로 급성 신경학적 손상을 겪을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필수입니다.
지금까지는 글루카곤 주사기나 펜을 이용해 스스로 또는 주변인의 도움으로 근육주사 방식으로 투여해야 했습니다. 글루카곤은 간에 작용해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전환하여 혈중 포도당 수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나 고령 환자처럼 자가 주사에 미숙하거나 수면 중일 경우 제때 대응하지 못해 중증으로 악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환자들이 저혈당 상태를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인 스탠포드대학교 전기공학과 시드하르트 크리슈난(Siddharth R. Krishnan) 교수는 “환자들은 혈당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느끼고 음식을 먹거나 글루카곤을 투여한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저혈당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혼란이나 의식 상실로 빠질 수 있다. 특히 환자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신체 내부의 자동 응급조치”…무선 신호로 작동하는 생체 장치
이번 MIT의 연구는 이런 임상적 한계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연구진은 연속 혈당 모니터링(CGM) 시스템과의 통신을 통해, 특정 임계값 이하로 혈당이 떨어지면 장치가 자동으로 글루카곤을 체내에 분사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장치는 3D 프린팅된 생체적합성 폴리머 케이스 안에 분말 상태의 글루카곤을 저장하며, 약물 저장고는 형상기억합금(니켈-티타늄 합금)으로 밀봉됩니다. 이 합금은 특정 주파수의 무선 신호를 통해 발열하고, 온도가 40도에 도달하면 물리적 변형을 일으켜 저장고를 열고 약물을 방출합니다.
기존의 액체 형태 글루카곤은 실온에서 장기 보관이 어려워 냉장 보관이 필요했지만, 분말 제형은 안정성이 높아 장기 이식에 적합합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체내에서 ‘응급 주사기’가 자동 작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당뇨만이 아니라 심정지·아나필락시스 대응에도 가능
연구진은 이 장치를 글루카곤 외에도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과 같은 다른 응급 약물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에피네프린은 심정지나 아나필락시스(급성 전신 알레르기 반응) 시 생명을 구하는 대표적인 약물입니다. 실제 쥐 실험에서 분말형 에피네프린이 방출된 직후 10분 이내에 심박수 증가와 혈중 농도 상승이 관찰됐습니다.
또한 이 장치는 체내 삽입 후 흉터 조직이 형성되더라도 방출 기능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장기 이식에 유리합니다. 이는 기존 삽입형 기기들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한 중요한 진전입니다.
향후 목표는 ‘1년 이상 작동하는 생체 이식형 응급 플랫폼’
이번 연구에서는 이 장치를 4주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연구진은 이 기간을 최소 1년, 더 나아가 수년간 작동 가능한 플랫폼으로 확대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장치 교체 주기를 줄이고, 혈당 센서 및 인슐린 펌프와의 통합까지 고려하는 ‘완전 자동 폐쇄 루프 응급 대응 시스템’이 장기적 비전입니다.
MIT 로버트 랭거(Robert Langer) 교수는 “우리 팀이 이 성과를 달성한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이 기술이 언젠가 당뇨병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응급 의약품 전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장치가 단지 당뇨 치료기기가 아니라, 응급 의약품 투여 방식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당뇨병 치료는 단순히 인슐린 투여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혈당과 저혈당 사이의 좁은 균형을 지키는 전방위적 모니터링과 대응이 핵심입니다. MIT의 이번 연구는 인체 내부에 삽입된 ‘지능형 경보-주사기-반응 장치’의 탄생을 의미하는 진전입니다. 약물이 아닌 장치 그 자체가 치료제로 기능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입니다. 이 작은 이식형 장치는 수면 중 갑작스러운 저혈당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심정지나 알레르기 쇼크로부터 고위험군을 구할 수 있는 ‘생체 내 안전망’을 만든다는 점에서 커다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장치가 응급 상황 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쇼크 방지에 쓰이는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의 응급 투여에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MI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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