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취임 7주년’을 맞은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앞세운 그의 최근 경영 행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LG그룹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냉난방공조(HVAC)·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 동력 사업은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한편, 전기차 충전기·수처리 필터 등 비핵심 사업은 전략적 정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LG그룹은 이러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통해 위기 대응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한 LG그룹 구광모 대표(가운데), LG화학 CEO 신학철 부회장(왼쪽), (주)LG COO 권봉석 부회장 (사진=(주)LG)
지난 3월 구 대표는 사장단 회의에서 "모든 사업을 다 잘할 수는 없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와 진입장벽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일부 사업이 양적 성장과 조직 생존 논리에 치우치면서 경쟁력을 잃고, 기대했던 포트폴리오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과거의 관성 탓”이라며 적극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LG그룹 전반의 사업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조 단위 투자를 단행한 LG디스플레이가 대표 사례입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경기 파주 등에 1조26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OLED 기술과 설비 확보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투자는 중국 광저우 LCD(액정 디스플레이) 공장 매각대금을 활용한 국내 리쇼어링 전략으로,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급증하는 OLED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 투자를 통해 프리미엄 OLED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패널과 모듈 인프라 구축에 집중합니다. OLED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가운데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이고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집중 투자한다는 전략입니다. 시장 조사 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OLED 시장은 매년 약 5% 성장해 2028년에는 10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입니다.
특히 LG디스플레이의 초대형 리쇼어링 투자는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액 1조2600억원 중 약 7000억원이 파주를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 집중되며, 이번 투자는 중국 광저우 LCD 공장 매각 후 국내에서 진행하는 첫 대규모 투자로 국가 경제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국내 중소 협력업체와의 연계 효과를 통한 간접 투자도 주목됩니다. 이번 투자는 대규모 직접 설비에 집중되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후방 산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며, 경기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긍정적 파급 효과가 기대됩니다.
구광모 LG그룹 대표가 지난 2022년 6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차세대 배터리 소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주)LG)
한편, LG의 배터리 사업도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400조원 이상의 수주 잔고를 확보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중국 3위 완성차 업체 체리자동차와 2030년까지 1조원 규모의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체리자동차는 고급 전기차 모델에 LG의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입니다.
업계는 특히 그동안 철옹성 같던 중국 완성차 시장 진출에 성공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자국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잠재 시장 공략을 지속하며 미래 성장 기회를 모색 중입니다. 현대차그룹과 합작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첫 배터리셀 공장 ‘HLI그린파워’도 그 한 예입니다. 이 공장은 연간 10GWh 규모로 전기차 약 15만 대에 탑재 가능한 배터리셀을 생산하며, 지난해 4월 양산 개시 후 4개월 만에 수율 96%를 달성했습니다.
지난 30일, LG전자는 노르웨이 온수 솔루션 기업 OSO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공조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OSO는 난방과 온수 솔루션에 특화한 기업으로, 히트 펌프로 가열한 물을 저장하는 기술인 스테인리스 워터스토리지 분야에서 유럽시장을 선도해 왔습 니다. 이번 인수 계약을 통해 유럽 HVAC 시장 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뿐 아니라 글로벌 HVAC 사업 전반에 온수 솔루션을 포함시켜 성장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입니다. 또한 지난해 말 조직 개편을 통해 공조 사업을 생활가전을 담당하던 H&A사업본부에서 분리, 에코솔루션(ES)사업본부의 핵심 사업으로 격상시킨 바 있습니다. 3년 만에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종료하며 사업 환경 변화에 따른 전략적 리밸런싱을 단행한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LG전자는 203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사업을 키워 글로벌 톱티어 종합 공조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LG전자 관계자는 “핵심 역량을 활용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접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하며, 미래 신성장 동력도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업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LG화학은 첨단소재사업 본부 내 워터솔루션(수처리 필터) 사업을 1조4000억원에 매각하는 등 다운사이징에 나서고 있습니다. 해당 사업 매출은 지난해 2200억원으로 LG화학 전체 매출의 0.45% 수준이며, 자산 총액은 3770억원으로 회사 자산의 0.4% 규모입니다. LG화학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 친환경 소재, 신약 등 3대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LG유플러스는 AI 중심의 조직 개편을 통해 AX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2024년 출시한 인공지능 기반 통신 서비스 ‘익시오(ixi-O)’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익시오는 엑사원을 활용한 AI 에이전트 서비스입니다. 올해 구글과 전략적 기술 협력을 맺은 LG유플러스는, 지난 3월에는 중동 최대 통신사 자인그룹(KSA)과 익시오 중동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LG유플러스는 차별화된 AI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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