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그룹에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번 판결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사업기회 제공 행위’ 판단 기준이 최초로 나왔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26일 최 회장과 SK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등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앞서 SK는 2017년 1월 LG그룹이 보유한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했습니다. 그해 4월 잔여지분 49% 중 19.6%만 추가 매입했고, 나머지 29.4%는 최 회장 개인이 사들였습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기초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만듭니다. 2016년 당시 영업이익은 332억원이었는데, SK하이닉스 등 그룹 계열사와의 연계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SK가 SK실트론 지분을 100% 인수하지 않고, 30%가량을 최 회장에게 넘긴 건 부당한 사익편취라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공정위는 사익편취를 인정, 2021년 12월 최 회장과 SK에게 각 8억원씩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SK가 100% 지분을 인수하지 않음으로써, 최 회장에게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사업기회 제공’을 했다고 봤습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이 총수 일가에게 수익성이 높은 사업의 기회를 제공해 총수 일가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기회 제공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SK는 2019년 대림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사업기회 제공 조항으로 제재를 받았습니다. 공정위의 당시 결정은 사업기회 제공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과 SK는 공정위 처분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공정위 처분 관할법원은 서울고법입니다.
서울고법은 최 회장과 SK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 제공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SK가 SK솔닉스 지분 29.4%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처분 권한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며 “SK가 (잔여지분 29.4%) 입찰 과정에서 A은행이 SK와 공모해 SK와 특수관계인 최 회장에게 지분을 취득하게 했다거나 투자자로 선정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대번원 원심 결론이 맞다며 공정위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소극적 방법에 의한 사업기회 제공을 인정하면서도, SK의 행위가 사업기회 제공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반드시 계열회사가 사업기회를 우선적·배타적으로 지배·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며 “계열회사가 유망한 사업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특수관계인 등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특수관계인 등의 사업기회 취득을 묵인하는 등의 소극적 방법으로도 사업기회 제공이 가능하다”고 전제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소극적 방법에 의한 사업기회 제공의 경우 적어도 그러한 제공이 적극적·직접적 제공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며 “개별적·구체적 심사에 의할 때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 의의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의 한 유형인 ‘사업기회 제공 행위’의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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