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범이라며 보험사들이 줄곧 문제 삼아온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제가 정부의 건강보험 '관리급여' 항목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의료계는 정책 방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구조 개편에 이어 지급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책의 명분은 '과잉진료 억제'지만, 민간 보험사만 수혜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보험업계, 손해율 줄이려 안간힘
27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등을 건강보험 관리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관리급여는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의 급여체계에 일부 편입해 일정 기준 아래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복지부는 이들 항목의 본인부담률을 95%로 설정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행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주요 비급여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심사 기준을 적용하려는 방향은 뚜렷합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지급보험금은 1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1000억원(8.1%)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영양제 등 비급여 주사제(2조8000억원)와 도수치료·체외충격파 등 근골격계 질환(2조6000억원)이 합산 5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35.8%를 차지하며 가장 큰 비중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암 치료 관련 지급보험금 1조60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은 수준입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이 같은 항목들이 실손보험 손해율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며 구조 개편을 반복해왔습니다. 2021년부터는 비급여 특약을 분리하고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최대 200%까지 할증하는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됐습니다. 소비자는 자기부담률 확대, 보장 축소, 갱신 보험료 인상 등으로 부담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당 항목을 아예 건강보험 체계로 흡수하면서 실손 보장에서 제외하려는 조치가 추진되면서 보험사에는 지급 책임에서 벗어날 기회가, 소비자에게는 또 한 번의 보장 축소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범이라며 보험사들이 줄곧 문제 삼아온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제가 정부의 건강보험 '관리급여' 항목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지며 의료계와 소비자들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보장 줄어드는데 보험료 인하 체감 못 해
실손보험은 2009년 도입된 이후 네 차례 개편됐습니다. 1~2세대 상품에서는 도수치료나 주사 치료를 제한 없이 청구할 수 있었지만 손해율이 악화되면서 구조 조정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기준 실손보험 세대별 손해율은 1세대가 97.7%, 2세대가 92.5%, 3세대가 128.5%, 4세대가 111.9%입니다. 특히 3세대는 출시 초기부터 손해율이 120%를 웃도는 고위험 구조로 운영돼 왔으며, 2020년 말 기준 손해율이 약 130%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비급여 진료 이용이 많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부담을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2021년 7월부터 비급여 특약을 본보험에서 분리하고, 이용량에 따라 해당 특약 보험료를 최대 200%까지 할증하는 4세대 실손보험을 도입했습니다.
실손보험은 세대가 거듭되면서 초기 보험료는 낮아졌지만, 자기부담금이 커지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보장이 제한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갱신 시점에는 보험료가 급등할 수 있어 체감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4세대부터는 비급여 특약이 분리되고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할증되면서 실제 의료 이용이 많은 가입자에겐 체감 부담이 더 커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비급여 이용에 따라 보험료가 2배 이상 오르기도 하는데, 도수치료가 보장에서 빠지더라도 보험료는 인하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추진되는 이번 관리급여 전환도 보험사의 비용 절감에는 유리하지만, 소비자 보장 측면에선 또 다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그에 따라 높은 자기부담금을 감수했지만 이제는 관리급여 전환으로 보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환자가 10만원짜리 도수치료를 받을 경우 건강보험이 5000원만 부담하고 나머지 9만5000원을 환자가 내야 합니다. 실손보험으로는 더 이상 해당 진료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도수치료를 안 받으면 매달 내는 보험비를 내리는 것이냐"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과잉진료를 방지하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조치라며 방향성의 타당성을 강조하지만, 보장 공백에 대한 소비자 보호책은 아직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료계 등 일부 이해관계자들은 정책이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제도 설계는 아직 초기 단계라,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항목이 관리급여로 편입되면 실손 손해율이 개선될 수 있고, 구조적으로는 보험료 인하 여력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손보험은 세대가 거듭되면서 초기 보험료는 낮아졌지만, 자기부담금이 커지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보장이 제한되는 구조로 바뀌면서 갱신 시점에는 보험료가 급등할 수 있어 체감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무릎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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