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햄버거와 고기 패티, 치즈, 라면, 케첩까지. 식사 하나만 들여다봐도 그 속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 UPFs)’이 가득합니다. 편리함이라는 미명 아래 식탁을 점령한 초가공식품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제 상식처럼 알려졌지만, 최근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National Cancer Institut) 연구팀은 이 식습관이 소변과 혈액 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몸이 말해준다”
지난주 학술지 플로스 메디신(PLOS Medicine)에 발표된 논문은 718명의 혈액과 소변 샘플을 분석해 초가공식품 섭취 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대사물질(metabolite) 지표를 개발했습니다. 단순히 식품 일기나 설문조사를 통한 자기 보고가 아닌, 신체 내부의 생화학적 흔적을 통한 정량 분석이 가능해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는 사람이 ‘무엇을 먹었다’는 기억에 의존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준이 마련된 것”이라며 “이는 초가공식품과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보다 명확히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먹을수록 멀어지는 건강
초가공식품은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닙니다. 고도의 산업공정을 거쳐 향미 증진제, 유화제, 착색료, 방부제 등 수십 가지 첨가물을 포함한 식품들로, 대표적인 예로는 과자, 탄산음료, 냉동식품, 인스턴트 라면, 가공육, 달콤한 요거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참가자의 하루 식사 내역을 기재받은 뒤, 각 식품을 초가공 여부에 따라 분류하고 섭취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분석 결과, 참가자의 하루 에너지 섭취 중 평균 50%가 초가공식품에서 비롯됐으며, 일부는 82%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섭취량이 많을수록 탄수화물, 당분, 포화지방이 증가하고, 단백질과 섬유소 섭취는 현저히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초가공식품 섭취 비율이 높은 사람의 소변에서는 2형 당뇨병 발병과 연관있는 특정 대사물질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부 참가자의 소변에서는 식품 포장재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분자까지 검출됐습니다.
한국인 식탁도 이미 점령당했다
국내 사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영양학회와 서울대 식품영양학과가 지난 3월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식단에서 초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하며, 특히 청소년과 20~30대에서 가장 높습니다. 초가공식품 섭취가 늘어남에 따라 소아비만, 대사증후군, 정신건강 저하 등 건강 문제도 동반해 증가하는 양상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초가공식품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나 경고 표시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식품 라벨에 원재료가 적혀 있어도 ‘고도 가공’ 여부를 파악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사 지표로 초가공식품 섭취 추적”…식생활 연구의 전환점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단발적 조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2018~2020년 사이, 2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무작위 대조 식이 연구(RCT)에서도 대사물질 분석이 실제 섭취 식단과 일치함을 입증했습니다. 참가자들은 2주간 초가공식품 중심 식단과 가공하지 않은 식단을 교차로 섭취했고, 소변과 혈액 내 대사물질의 조성이 두 식단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대규모 역학 연구에서 식습관을 더욱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셈입니다. 연구팀은 “젊은 세대나 다양한 식문화 집단을 대상으로도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초가공식품이 암 등 만성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명하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왜 초가공식품에서 벗어나기 힘든가
하지만 초가공식품 문제는 단지 개인의 식습관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식생활은 이미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며, “소금, 설탕, 지방 함량이 높은 식단과 초가공식품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합니다.
향후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무엇이 진정으로 해로운 요소인지 명확히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식품 산업이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가공식품은 더 이상 단순한 영양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의 화학 반응이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이는 암, 당뇨, 심혈관 질환은 물론 정신 건강까지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연구는 우리의 식탁을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을 촉구합니다.
초가공식품의 섭취 제한이 비만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효과적인 전략임을 보여주는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 등 연합 연구진의 연구 결과(자료=Cell Metabolism)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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